프랑스 비아리츠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장에 갑자기 이란 외교장관이 나타났다. ‘미국발 이란 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프랑스가 G7 참가국도 아닌 이란의 자바드 자리프 외교장관을 부른 것이다. 호르무즈의 긴장을 풀기 위한 물밑 외교전의 배경에는 이란을 붙잡아야 하는 프랑스의 이해관계가 숨어 있다.
자리프 장관은 25일 G7 정상회의가 열리는 프랑스 남서부 휴양지 비아리츠를 깜짝 방문했다. 자리프 장관은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교장관과 3시간 30분 정도 회동을 했다. 자리프 장관은 만남 뒤 소셜미디어에 “건설적인 개입 추구하는 이란의 활발한 외교는 계속된다”며 “앞길이 험하지만 그럴 가치가 있다”고 적었다. 자리프가 나타나면서 일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 미국측 고위 관계자들과의 만남이 이뤄질까 하는 기대가 생겨났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큰 성과는 없었지만 이란의 대화 의지는 보여준 셈이다.
이날 자리프를 '전격적으로' 초대한 것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었다고 AFP통신 등은 전했다. 마크롱이 G7 정상회의 전날인 23일 자리프를 만나 대화를 나눴고, 24일 정상들의 기념 만찬을 마친 뒤에는 다음날 회의장에 자리프를 부르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마크롱은 “긴장을 완화하려면 (대화의) 이니셔티브가 필요하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자리프 방문이 “긍정적”이었다고 밝혔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란과의 핵협정(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을 파기하고 제재를 시작한 이후, 프랑스는 줄곧 핵협정을 이어가야 한다며 미국을 설득해왔다. 프랑스의 주장은 미국이 대이란 제재를 완화해서 중국과 인도에 석유를 팔 수 있게 해주라는 것이다. 또 미국이 이란 앞바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최대의 압박’을 잠시 중단하고 이란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이란은 미국이 핵합의를 깨뜨리자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재가동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핵협정은 뒷전으로 밀어둔 채 이란을 향해 “미사일 협상 테이블에 나오라”고 압박했으나 이란은 거부했다. 미국은 지난달 자리프를 제재 대상에 올리기까지 했다.
마크롱이 이란 갈등의 중재자를 자임하고 나선 데에는, 힘 빠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대신해 ‘유럽의 지도자’로서 위상을 굳히려는 욕심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근본적인 이유는 경제적 필요성이다.
두 나라는 서로에게 최상위 교역 파트너는 아니지만, 프랑스에는 이란 시장이 필요하고 이란에는 투자자가 필요하다. 프랑스는 이란-이라크 전쟁이 벌어지던 1980년대부터 이라크를 지원해왔고, 이라크에 미라주 전투기와 원자로를 팔았다. 그러나 이란과도 오랫동안 교류를 유지해왔고 2000년대 들어서는 부쩍 경제협력을 늘렸다. 이란 핵 의혹이 한창이던 2003년 프랑스와 이란은 투자협정을 체결했다. 2015년 이란 핵협정이 체결된 이후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첫 유럽 순방 때 방문한 나라가 프랑스와 이탈리아였다.
알자지라방송 등에 따르면 프랑스가 이란에 수출하는 물품의 25%가 자동차다. 이란항공은 핵협정 뒤 제재가 풀리기 시작하자 새 항공기를 200대나 주문했는데, 그 중 100대를 에어버스로부터 사기로 했다. 20대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합작기업인 ATR, 나머지 80대는 미국 보잉사가 수주했다. 이란은 미국이 에어버스의 여객기 인도를 막고 있다며 수차례 항의했다. 에너지회사 토탈은 이란과 48억달러 규모의 천연가스전 채굴계약을 했으나 미국이 다시 제재를 시작하자 지난해 결국 개발을 멈춘 상태다. 프랑스로선 르노와 에어버스와 토탈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이란이 꼭 필요한 셈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마크롱이 나서고 있지만 자칫 역효과를 부를 우려도 있다. 자리프의 G7 회의장 방문 뒤 프랑스 관리는 AFP에 “미국 관리들도 사전에 동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트럼프는 “자리프가 오는 줄 몰랐다”며 엇갈린 발언을 했다. 마크롱이 트럼프에게 이란 핵협정 폐기를 재검토하라고 계속 설득하자 트럼프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 트럼프는 지난달 트위터에 “에마뉘엘(마크롱)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지만, 미국에 뭐라 말할 수 있는 건 미국 자체뿐”이라는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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