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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수상한 GPS']이스라엘-UAE 협정 이은 트럼프의 다음 카드는 '푸틴'?

딸기21 2020. 8. 1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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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이 2018년 7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첫 정상회담을 하며 악수를 나누고 있다.  AFP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선 ‘깜짝 카드’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관계 정상화를 외교 치적으로 과시한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전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고 미국 NBC방송이 16일(현지시간)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문제에 관여해온 4명의 관리들이 정상회담 계획을 전했고, 다음달 뉴욕에서 여는 방안 등을 비롯해 회담 장소와 형태를 놓고 여러가지를 검토 중이라는 것이다.

 

크렘린은 4년 전 대선 때 프로파간다 싸움에서 트럼프 캠프를 지원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을 몹시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집권 뒤 가장 골치를 썩인 문제도 러시아와의 관계였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인들에게 호감을 얻지 못하는 위협적인 존재다. 역설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의 제스처가 미국 대선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이슈가 될 수 있다. 백악관이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추진하려 하는 깜짝쇼는 전격적인 군축협상이다. 내년 2월에 끝나는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을 연장한 새로운 협정에 두 정상이 나란히 서명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2017년 11월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긴밀히 대화하는 푸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크렘린·스푸트니크

 

뉴스타트는 2010년 4월 체코 프라하에서 버락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 서명해 2011년 발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협정의 시한 만료를 앞두고 지난해 4월 ‘중국까지 포괄하는 새 군축협상을 만들라’고 정부에 지시했다. 러시아보다는 중국의 위협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고, 트럼프 대통령 임기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트럼프 정부는 강력한 핵 군축 의지를 보여주기는커녕 지난해 러시아와의 중거리핵전력조약(INF)도 탈퇴했다. 올들어서도 미국이 30년 가까이 중단한 핵실험을 재개할 수 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중국까지 끼워넣은 군축협상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러시아와의 협정만 성사되어도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의 위협을 막았다’고 선전할 수 있다. 한 정부 관리는 NBC에 “대통령은 협상가(deal-maker)로서의 능력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며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큰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16일 이 방송 ‘언론과의 만남’ 프로그램에 나와 “대통령이 아직 푸틴 측에 만남을 제안하지는 않았지만 러시아 지도자와의 새 군축협정 서명식을 열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2000년 6월 일본 오키나와의 나고에서 열린 주요8개국(G8) 정상회의에서 만난 푸틴 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AP
2001년 11월 푸틴 대통령이 미국 텍사스주 크로포드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만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Getty Images

 

마셜 빌링슬리 미 군축담당 특사는 지난 6월 뉴스타트 연장을 놓고 미국 측이 “모든 옵션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고 했다. 미국은 5년간 뉴스타트를 연장하길 바라며, 러시아가 공개하지 않은 신무기 시스템 2종도 대상에 넣고 싶어한다. 미국과 러시아가 먼저 군축에 합의함으로써 중국도 압박해 끌어들인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세부사항이나 연장 기한 등에서 이견이 많아 실무그룹 선에서 논의가 교착됐고 중국은 명확하게 참여를 거절했다.

 

그러다가 6월 말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미군 공격’을 사주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관계가 극도로 악화됐다. 국무부 발표에 따르면 다시 협상을 이어가기 위해 빌링슬리 특사가 17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교차관을 만난다.

 

군축도 중요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미국에 와줄 것이냐가 더 관심을 끈다. 푸틴 대통령은 집권 첫해인 2000년 뉴욕을 방문해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과 ‘밀레니엄 정상회의’를 했다.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에는 워싱턴과 텍사스 등을 국빈 방문했다. 2004년에는 로널드 레이건 전대통령 장례식과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 참석차 다시 미국을 찾았다. 2007년에는 부시 대통령과 메인주 케너벙크포트에서 만났다. 하지만 그 후로 10여년 동안 유엔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에 간 것을 빼면 개별 방문은 없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09년 7월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푸틴 대통령의 다차(여름별장)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백악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접촉도 전화로 이뤄진 게 대부분이며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것은 손꼽을 정도다. 2018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두 정상의 첫 정상회담은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스캔들에 가려 엉망이 됐다. 그 해 10월 존 볼턴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이 “푸틴 대통령을 워싱턴으로 초청했다”고 밝혔지만 후속 움직임은 없었다.

 

올초에는 푸틴 대통령이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P5) 정상의 만남을 제안했으나 코로나19가 퍼지면서 무산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서 열려던 G7 정상회의를 가을로 연기하면서 러시아도 초청하자고 했으나 다른 회원국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러시아는 P5 모임에서 이란 문제를 논의하자고 재차 제안했으나 미국이 거절했다. 오브라이언 보좌관의 설명을 빌면 러시아가 미국을 “괴롭히려고(Bullying)” 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2017년 7월 독일 함부르크 G20 정상회의 때 대화를 나누는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  Getty Images

 

트럼프 대통령과 러시아의 미심쩍은 관계가 자칫 더 부각될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만일 푸틴 대통령이 미국에 와서 양자 회동을 하고 군축협정에 서명하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선판의 큰 이슈가 될 것은 분명하다. 뉴스타트 연장안은 의회의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고 두 정상이 사인만 하면 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실현 가능성이 낮은 ‘백악관의 희망사항’으로 보인다. 오브라이언 보좌관은 두 정상이 지난달 23일 통화하면서 뉴스타트 연장안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크렘린은 군축협상이나 미국 방문 등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 푸틴 대통령이 개별 방문 대신에 이번에도 9월말 유엔 총회 참석 형식을 빌어 트럼프 대통령과 만날 수는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다른 정상들이 거의 참석하지 않은 채 화상회의로 진행될 예정이어서, 푸틴 대통령이 만일 직접 뉴욕을 찾는다면 방문의 효과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CNN방송 등은 두 정상 만남이 대선 전에 성사될 가능성은 낮다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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