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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네루와 보르헤스, 어떤 사람들이 자신을 말하는 방식.

자와할랄 네루는 위대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를 직접 접했던 미국의 인도학자 스탠리 월포트의 평에 따르면 '네루는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잘 생기고, 달변이었다. 또한 이상적이고 낭만적이었으며, 역동적이었지만, 언제나 무척 사적인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수없이 많은 추종자와 숭배자들이 있었지만 친구는 거의 없었으며, 생애의 말년에 이르러서는 진실로 믿을만한 상대라곤 자신의 딸인 인디라밖에 없었다'. 어렸을 때, 세계사편력을 쉽게 번역해놓은 '아버지가 들려주는 세계사 이야기'라는 책을 읽었다. 세계사편력보다 우리나라에서는 더 먼저 번역출간된 책이다. 대학에 들어가서 다시 세계사편력을 펼쳤는데, 기억과는 달리 별로 재미가 없었다. 옥중의 아버지가 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 본다면 어린 시절 읽었..

딸기네 책방 2002.12.06

[스크랩] 조반니노 과레스키, <약속을 지킨 소녀>

조반니노 과레스키는 우리나라에서는 ‘돈 까밀로와 빼뽀네(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로 알려져 있지만, 이 작자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은 재미있고 우스꽝스런 까밀로 연작보다는 바로 이 작품입니다. 제 기억의 박물관에서는 ‘보리와 임금님’ 다음으로 소중한 것이 이 이야기랍니다. 여러번 베껴쓰기도 했었어요. 친구들에게 편지 쓰면서, 열심히 또박또박 베껴서서 보내주기까지 했다니까요. 그런데 서른씩이나 먹어서 지금 읽어보면, 어쩌면 유치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네요 조반니노 과레스키, 여자라고? 아니, 여자는 필요없다.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약간 흥청거리는 일이라면 난 언제나 찬성이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나에겐 이미 내 소녀가 있다. 그녀는 파브리꼰의 길을 따라 늘어선 세 번째 전봇대에서 매일 저녁 나를 기다..

딸기네 책방 2002.12.05

쿼크로 이루어진 세상

쿼크로 이루어진 세상 한스 그라스만 (지은이), 염영록 (옮긴이) | 생각의나무 "이리넬은 앙칼지지도 않고 경망스럽지도 않은 그런 평범한 소녀였다. 그렇게 평범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소모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제 그녀는 자신이 잃어버린 세월을 되돌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리넬은 도망자였다." . 청소년을 위한 물리학 개론서 형식으로 돼 있는데, 특이하게도 1장은 이라는 소설같은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서문 격인 이 글이 너무나 아름다웠고, 마음이 아팠다. 세상에는 언제나 독재자(혹은 사람의 감정을 매몰시키고 사람의 생각을 현실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모든 것)가 있기 마련이고, 그렇기 때문에 독재자에게 도망치려는 사람들 또한 ..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어떤 문제가 중요하고 어떤 문제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어느 정도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다" (한스 그라스만, 중에서) 그런데 내 생각에는,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들을 쳐내는 법을 아는 것이 행복에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중요하지도 않은 일 갖고 지지고볶고 하기엔 시간이 좀 없는 탓도 있지만, 행복한 삶을 좀먹는 것들은 보통 사소한 일들일 경우가 많기 때문. 고등학교 때 읽었던 잠언집에 나온 말인데 "가장 훌륭하고 꼭 획득해야 하는 것은 단순함"이라고 했다. 그라스만의 말과는 다른 맥락에서이긴 하지만 이 경구를 좋아한다.

[스크랩] 체 게바라, 몇편의 시들

(에 실려 있는 몇편의 시들이다. 이산하 시인이 묶은 것과는 조금 순서를 바꿨다. 시의 행들도 내 마음가는대로 읽기 위해 시인이 편집해놓은 것하고 다르게 붙이고 떼고 했다.) 나의 삶 내 나이 열다섯 살 때, 나는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하는가를 놓고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그 죽음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이상을 찾게 된다면 나는 비로소 기꺼이 목숨을 바칠 것을 결심했다 먼저 나는 가장 품위있게 죽을 수 있는 방법부터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문득, 잭 런던이 쓴 옛날이야기가 떠올랐다 죽음에 임박한 주인공이 마음 속으로 차가운 알래스카의 황야같은 곳에서 혼자 나무에 기댄 채 외로이 죽어가기로 결심한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이 내가 생각한 유일한 죽음의 모습이었..

딸기네 책방 2002.12.01

바티만 아니었다면

흑흑 어제 로마가 아스날한테 3대1로 깨졌다... 사실 아스날은 아주 잘 하는 팀이다. 앙리의 슛은 시원하고- 얼마전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앙리가 무려 60여m를 돌파해서 골을 넣는 걸 봤는데, 정말 대단했다. 로저 르메르 전 프랑스 국대 감독이 "앙리가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던가. 결국은 앙리에게 를 기댈 수 있으리라는 얘기였을테고. 앙리는 한일 월드컵 때에는 기껏 한 경기 출전, 그리고 두번째 경기에서 빨간딱지 받아 마지막 덴마크와의 경기에는 나오지도 못했기 때문에 플레이를 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지난해 컨페드컵 때에도 빠졌었고. 그치만 아스날에서 요즘 뛰는 거 보면 장난 아니다. 그 돌파력! 피레는 발재간 장난 아니고 예술성도 다분하고, 또 비에이라는 어떤가. 월컵 전에 지단이, "비에이라가 세계..

내 가방 속의 천사들

이란 영화를 재밌게 봤었다. 그 뒤로 나는 가끔 책상과 가방을 뒤지며, 그 속의 천사를 찾는다. 어제는 모처럼 휴가를 내서 하루 쉬었는데 그 사이 가방 안에 천사가 들어왔다. 이제, 천사들의 합창 시작-. stabilo 포인트88 펜. 몸통은 주황색, 잉크는 회색. 책에 줄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장만했다. 회사 서무에게 펜을 달라고 하면 플러스펜을 주는데, 값이 싼 대신 쓰는 느낌이 안 좋고 오래오래 쓸 수가 없어서(너무 빨리 마르고, 펜촉도 잘 닳는다) 안 좋아한다. 그렇다고 내가 펜을 돈 주고 사는 일은 통 없지만 그제 문구점에서 구경을 하다가 큰맘먹고 새 펜을 샀다. 어느 해였던가, 교육방송의 강사가 '밑줄 쫙, 별표 하나' 식의 강연으로 인기를 얻었던 적 있었지. 얼마전 회사의 몇..

빈라덴의 참깨

몇해 전 서울지검 남부지청에 참깨 원산지를 속여 판 놈들이 걸려들어왔습니다. 국내 영세 참기름업체들에 수입 참깨를 팔면서 원산지를 '중국'으로 바꿔 표기했다는 거였는데, 그럼 이 참깨의 진짜 산지는 어디냐. 아프리카의 수단이었습니다. 중국산 농산물을 국내산으로 속여 파는 거야 다반사지만, 수단산을 중국산으로 둔갑시킨다는 얘기는 처음이었죠. 머나먼 수단같은 나라보다는 그래도 가까운 중국산으로 해야 값을 더 받을 수 있다는 건데, 잡혀온 놈들 주장은 "모모 기업같은 큰 회사들도 다 수단산 참깨를 쓴다"는 거였습니다. 저는 올봄에 이마트에서 기니산 가자미를 사다 먹은 적도 있는데 맛이 괜찮았습니다. 식생활의 국제화에 대한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요. 오사마 빈라덴 아시죠. 오사마가 91년 아프간에서 나와 걸..

빚받기 운동을 펼쳐 나라를 살리자?

어제 한 선배와, 아지님과 맥주를 한잔 했습니다. 이라크 갔다온 얘기를 하던 중에 빚 얘기가 나왔습니다. 개요부터 말하자면, 우리가 이라크로부터 받지 못하고 있는 돈이 13억달러 정도 됩니다. 러시아 다음으로 우리한테 많은 빚을 지고 있는 나라가 이라크 아닐까 싶은데요. 이라크는 1970년대 오일붐 때 인프라를 건설하기 위해 외국 기업들을 많이 불러들였죠. 여행기에서 썼던 훌륭한 인프라, 예술적인 대형 건물들이 다 외국 기업들에 맡겨 지은 것들입니다. 그러다가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일어난 거죠. 우리나라 기업들을 비롯해 많은 기업들이 돈 못받고 불량채권만 안게 된 겁니다. 러시아가 약 90억달러, 프랑스가 약 50억달러의 이라크 채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이 이라크를 또 때릴..

매트 리들리, '붉은 여왕'

붉은 여왕 The Red Queen 매트 리들리 (지은이), 김윤택 (옮긴이) | 김영사 과 를 통해 국내에서도 탁월한 과학저술가로 인기를 끌고 있는 매트 리들리가 性선택 이론을 근간으로 인간의 성격과 행태를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학습이냐, 본능이냐. 저자의 주장은 두 가지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엄 촘스키, 리처드 도킨스, 매트 리들리의 공통점은? 유전자 과신론자가 아니라, 유전자의 진실을 보려고 노력했다는 것. 여성과 남성이 다르다는 건, 그들을 해야 된다는 얘기랑은 다르다. 를 부정하면서 모든 것을 과 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리들리의 주장대로 하고 맞닥뜨리는 쪽이 낫지 않을까. 난 리들리의 책들을 참 좋아한다. 특유의 재치있고 명쾌한 설명. 낙관적이면서도 겸손할 수 있다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