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198

어제의 오늘/ 미시마 유키오의 자살

일본 전후 최고의 작가로 불렸던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본명은 히라오카 기미타케(平岡公威)다. 그의 인생 초창기는 전형적인 일본 엘리트의 경로를 밟는 듯했다. 고위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귀족학교로 유명한 도쿄의 가쿠슈인 대학을 나왔고 2차 대전 때 군수품 공장에서 근로봉사를 했다. 전쟁이 끝난 뒤 도쿄대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1948~49년에는 옛 대장성 금융국에서 일했다.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49년 발표한 첫 소설 이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동성애자가 겪어야 하는 고통을 묘사한 자전적인 작품으로, 문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추천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미시마는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나섰다. 이후 내놓은 소설들도 대부분 신체적인 문..

어제의 오늘/ 자유의 시인, 엘뤼아르 숨지다

“하늘이 나를 버렸을 때, 나는 불을 만들었다/동지가 되기 위한 불/겨울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불을.”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시인 중 한 사람인 폴 엘뤼아르는 사랑과 열정의 시인, 그리고 ‘정치적인 시인’이라는 상반된 두 가지 평을 듣는다. 엘뤼아르는 1895년 파리 북쪽 생드니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외젠 에밀 폴 그랭델. 태어난 곳은 노동자 거주지역이었으나 엘뤼아르 자신은 회계사 아버지 밑에서 비교적 유복하게 자라났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폐결핵으로 공부를 중단했고 스위스의 산골마을 다보스에서 요양을 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소년의 영혼에 시적 감수성이 새겨진 것은 1911~13년 요양소에서였다. 보들레르, 아폴리네르 등 프랑스의 시인들과 휘트먼을 비롯..

어제의 오늘/로디지아에서 짐바브웨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개척자’로 꼽히는 영국 출신 귀족사업가 세실 로즈는 다이아몬드 회사 드비어스의 창업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이름을 딴 ‘로즈 장학금’으로도 유명하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받았다는 로즈 장학금은 영어권 모든 학생들의 ‘꿈의 장학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에는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중턱에 로즈 박물관이 있고 말을 탄 로즈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그가 사실은 제국주의자로서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을 학살·착취했다는 사실도 역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영욕을 상징하는 이름은 ‘로디지아’다. 로디지아는 그의 이름을 따서 남아공 옆에 세워졌던 나라다. 스페인 펠리페2세의 이름에서 나온 필리핀이라는 이름과 함께 로디지아라는 국명은 제국주의자의 영광을 상징하..

어제의 오늘/ 14년 전 이츠하크 라빈 암살

올봄 집권한 이스라엘의 우파 리쿠드당은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부정하고 폭력적 해법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스스로 그렇게 비난하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무장정치조직 하마스나 다를 바 없다. 이스라엘 극우파의 위험성은 이슬람 무장조직의 위험성에 비해 덜 알려져 있지만 ‘유대 극우파 테러’도 그 못잖게 무섭다. 이를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 14년 전 오늘 일어난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 암살사건이었다. 이스라엘인들이건, 이스라엘 외부에 사는 ‘디아스포라(이산)’ 유대인들이건 1995년 11월 4일의 비극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카흐네차이로 알려진 유대 극우파 집단에 소속된 이갈 아미르라는 청년이 93년 오슬로 평화협정을 체결한 라빈 총리를 죽였다. 총탄 세 발과 함께 모처럼 만들어진 해빙 분위기와 이스라엘..

어제의 오늘/ 뉴욕항에 자유의 여신상 서다

“여기 해지는 바닷가에 횃불을 든 여인이 있으니 그 불꽃은 투옥된 번개, 그 이름은 추방된 이들의 어머니/횃불을 든 손은 전 세계에 환영의 빛을 보내며 부드러운 두 눈은 항구를 향해 명령한다/오랜 대지여, 화려했던 과거를 간직하라/지치고 가난한, 자유를 숨쉬고자 열망하는 이들을 나에게 보내다오, 폭풍우에 시달리는 고향 없는 자들을 내게 보내다오” 미국 뉴욕 ‘자유의 여신상’의 받침대에 새겨져 있는 에머 래저러스의 소네트다. ‘자유를 열망하는 모든 이들의 어머니’인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옮겨져 1886년 10월 28일 뉴욕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신상의 공식 명칭은 ‘세계를 밝히는 자유(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이 제막식에 나와 양국..

어제의 오늘/ '과학자들을 불러들여라' 아이젠하워의 결정

올해 부문별 노벨상 수상자들이 발표되면서 시선은 온통 미국으로 쏠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논란 많은 평화상 수상은 논외로 치더라도, 올해 7개 부문 수상자 13명 중 무려 11명이 미국 국적을 가진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미국의 돈과 야심이 노벨상 독식을 가져왔다”는 해석이 나왔고, 유럽은 연구개발(R&D) 예산을 늘려서라도 자기네 지역 출신 수상자들을 늘려보겠다며 벼르고 있다. 1901년 이후 노벨상 수상자 총 816명 중 309명(약 38%)이 미국인이라고 하니 독식이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그 ‘독식’ 이면에는 세계적인 두뇌들을 빨아들이고 키워주는 포용정책과 장기적인 안목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스웨덴 한림원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발표할 때에는 관행적으..

어제의 오늘/ 척 예거의 음속 돌파

미국의 윌버 라이트와 오빌 라이트 형제는 1903년 비행기를 공중에 띄우는 데에 처음으로 성공했고, 찰스 린드버그는 1927년 ‘스피릿 오브 세인트루이스호’를 타고 미국 뉴욕과 프랑스 파리 간 대서양 무착륙 단독비행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옛소련의 유리 가가린은 61년 최초로 우주선을 타고 지구 궤도를 돌았지만 7년 뒤 비행기 사고로 숨을 거뒀다. 미국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은 가가린이 죽은 이듬해 아폴로11호를 타고 달에 착륙, 외계 천체에 첫발을 디딘 외국인이 됐다. 우주항공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또 한 명 있다. 47년 ‘마하(음속)의 벽’을 깬 찰스 엘우드 '척' 예거다. 예거는 그 해 10월 14일 오전 10시 29분 벨 사가 제작한 X1 비행기를 타고 미 서부 모하비 사막의 에드워드 ..

어제의 오늘/ 칸다하르에 가보고 싶다

아프가니스탄 남부의 칸다하르는 해발 1000m 높이에 있는 고원도시로서 고대부터 교역의 중심지로 유명했다.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이스칸다르’라는 인명이나 지명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데, 고대 그리스의 정복자 알렉산드로스를 뜻한다. 기원전 4세기 이 일대까지 진군해왔다가 결국 인도까지 이르지 못한 채 군대를 물려야 했던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알렉산드리아’) 들을 제국 곳곳에 건설했다. 칸다하르 역시 이스칸데리야, 즉 이스칸다르가 지은 도시 중 하나였다. 칸다하르라는 이름에는 2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가 숨어있는 셈이다. 아프간 땅 대부분이 척박한 사막·고원이지만 칸다하르 주변은 양과 양털, 목화, 과일이 많이 나는 비옥한 지역이다. 아프간 남부에서 이란(페르샤)으로 ..

747 점보기 첫 선

‘점보기’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보잉 747. 20세기 항공기의 대명사다. 미국 보잉사는 1960년대까지 민항기의 주류를 이루던 707을 대체할 초대형 항공기로 747을 디자인했다. 초창기 터보제트 엔진의 2배 출력을 낼 수 있는 고출력 터보팬 엔진이 개발돼 점보기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설계될 때만 해도 보잉사에는 초대형 항공기를 조립할 수 있는 공장이 없었다. 보잉은 미국 내 50여개 도시를 놓고 입지를 고민한 끝에 워싱턴주 에버릿의 페인필드 미군기지 땅을 이용하기로 했다. 이곳에 66년 316헥타르의 공장을 만들고 조립에 들어갔다. 사운(社運)이 걸린 일이었던지라 윌리엄 앨런 당시 보잉 회장이 에버릿 공장 설립을 일일이 현장에서 지휘했다고 한다. 에버릿 공장은 당시 미국에 지어진 가장 커다란 건..

1889년 9월 23일 닌텐도 설립

일본 최대 비디오게임 제조회사인 닌텐도(任天堂)는 1889년 9월 23일 교토에서 설립됐다. 당시 이름은 닌텐도곳파이(任天堂骨牌).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지금 정보통신(IT) 산업의 총아로 각광받는 닌텐도의 시작은 다름아닌 ‘화투’였다.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하나후다 즉 화투는 모두 수제품이었고, 닌텐도의 상품들도 뽕나무 판에 하나하나 손으로 그린 것들이었다. 창업자 야마우치 후사지로(山內房治郞)는 먼저 교토와 오사카 두 곳에 점포를 내고 화투를 팔았는데 이 가게들이 잘 돼 사업을 확대했다. 야마우치는 조수들을 고용해 생산량을 크게 늘렸다가 나중에는 대량생산 체제를 만들고 ‘닌텐도배(杯)’라는 화투 대회까지 만들며 경영수완을 발휘했다. 1902년 일본 최초로 트럼프 카드를 만들어판 것도 야마우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