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866

파시즘-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

파시즘 The Anatomy of Fascism (2004) 로버트 O. 팩스턴 (지은이) | 손명희 | 최희영 (옮긴이) | 교양인 | 2005-01-10 파시즘 자체에 별반 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유럽사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지라, 유럽현대사 공부하는 셈 치고 읽었다. 실은 책을 다 읽은지 며칠이 지났는데, 독후감을 쓰기 전에 이 책의 ‘의미’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을 못했다. 왜냐? 휴가 받아 노느라... 그러고 나서 까먹어버렸다. 내가 분명 며칠전에 무슨 책 하나를 읽은 것 같은데 뭐였더라... 폼잡으려고 사무실 책상 내려앉도록 쌀가마니처럼 쌓아둔 하드커버 책들을 훑어보니 ‘파시즘’이 보였다. 이런, 까먹고 있었잖아. 책은 아주 묵직하다. 두껍고 자세하고..

딸기네 책방 2005.07.26

중동의 평화에 중동은 없다 - 촘스키의 젊은 시절 글들

중동의 평화에 중동은 없다 Middle East Illusions (2003) 아브람 노엄 촘스키 (지은이) | 송은경 (옮긴이) | 북폴리오 | 2005-03-07 책은 촘스키에 대한 책이 아니라 '촘스키가 쓴 책'인데 내 눈에는 책의 내용보다 촘스키가 더 많이 눈에 들어왔다. 1960년대부터 2002년까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촘스키의 글들을 묶었다. 이-팔 문제에 대해 깊이 알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이 책을 찾아서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책의 내용 중 절반 이상은 오래전에 쓰인 것들이고, 심지어 1979년 이란 혁명 이전의 상황을 담고 있다. ‘미국의 대테러 정책에 대한 촘스키 보고서’라는 부제는 잘못된 것이다. 이 책은 이-팔 문제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다. 두루두루 미국이..

딸기네 책방 2005.07.04

레벌루션 No.3- 소년특공대에 경의를 표함

레벌루션 No.3 Revolution No. 3 가네시로 카즈키 (지은이) | 김난주 (옮긴이) | 북폴리오 | 2006-02-10 ‘플라이 대디 플라이’를 읽고 감동받아 이 책을 읽어버리고야 말았다. 단 하루만에. 심신위축증에 걸린 만년부장 아저씨를 ‘플라잉 대디’로 만들어줬던 소년특공대, 바로 그들의 이야기다. 책은 옴니버스처럼 몇 개의 에피소드들로 구성돼 있다. 짜식들, 귀엽고 웃기고 발칙하다. 작가는 이 우스꽝스런 삼류고교 삼류인생 예정자들의 순진난만한 모험담을 펼쳐놓는 와중에 한마디씩 톡톡 폭탄알을 심어놓는다. 이 자그마한 폭탄들이 파열음을 내는 곳은 경직되고 계급화된 일본 사회이지만 내 눈엔 우리 사회도 남의 말 할 처지는 아닌 듯싶다. 내가 밟은 몇 개의 폭탄들. 헤헤헤, 알만하군. 순신은,..

딸기네 책방 2005.05.26

'앵무새 죽이기'의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작가 모습 드러내 (로스앤젤레스 AP=연합뉴스) 수십 년 간 대중의 눈을 피해 은둔해 온 '앵무새 죽이기'의 작가 하퍼 리(79)가 로스앤젤레스 공공도서관에서 수여하는 상을 받기 위해 지난 19일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리는 미국 남부지역의 인종차별을 다룬 이 1960년 작 소설로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몇 년 후부터 인터뷰와 대부분의 초청을 거부해 왔다. 그러나 지난 1962년 `앨라배마에서 생긴일'이란 이름으로 이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에서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 역을 맡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고(故) 그레고리 펙의 부인 베로니크 펙과 평생지기가 된 리는 이날 베로니크 펙의 초청에 응했다. 당시 그 영화에서 무고하게 백인여성을 강간한 혐의를 받는 흑인역을 연기한 브..

딸기네 책방 2005.05.25

플라이 대디 플라이- 못난이 아빠와 소년특공대

플라이, 대디, 플라이 가네시로 카즈키 (지은이), 양억관 (옮긴이) | 북폴리오 가네시로 카즈키. 일본 이름의 재일조선인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집에 이 작가의 소설책 몇권이 있었는데 한번도 들춰보지를 않았다. ‘재일한국인(자이니치)’이라는 꼬리표가 부담스러웠다고 할까, 아무튼 그랬다. 독자인 내가 저 꼬리표를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책장 한번 안 열어봤을 정도인데 작가 자신에게는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그 꼬리표는 소설 안에서 그냥 달랑달랑, 분명 눈에 띄는 표식인 동시에(주인공의 한 명인 ‘박순신’의 이름에서 드러나듯) 무겁지도 음울하지도 않게 달려있다. 무거움, 어두움, 그런 것들을 예상하고 있던 나의 선입견은 책 앞날개에 쓰여 있는 작가 소개를 읽으면서 달아나버렸다. 이 정도면 마음 편히 읽어도 ..

딸기네 책방 2005.05.25

쏘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

쏘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 When Sophie Gets Angry -Really, Really Angry... 몰리 뱅 (지은이) | 이은화 (옮긴이) | 케이유니버스 | 2000-12-23 최근 읽은 아이 그림책 중에 가장 맘에 드는 책. 이건 아이가 아니라 나를 위한 책이다. '제 분에 못이겨 아이에게 화내는 엄마'를 위한 책. 그림이 처음엔 좀 낯설었다. 굵은 테두리가 있는 그림책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면과 면을 굵은 선으로 구분해놓는 것이 아이의 정서발달엔 좋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어디서 주워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때문이다. 그런고로 나는 피카추 따위의 그림을 몹시 안 좋아한다. 헌데 이 책은 바로 그 테두리로 넘쳐난다. 사람도, 인형도, 색색깔 테두리로 둘러쳐져 있다. ..

딸기네 책방 2005.05.23

강아지똥- 난 왜 이 책이 맘에 안 들지.

강아지똥 권정생 (글) | 정승각 (그림) | 길벗어린이 | 1996-04-01 이 책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들었다. 주변 엄마들 치고 이 책 모르는 사람 없을 것이다. 알라딘에 리뷰를 올리려고 들어와보니깐 그동안 올라와 있는 리뷰가 무려 264편이다. 별점도 꽤 높다...가 아니고 아주 높은 편이다. 이렇게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좋아하는구나! '신경쓸 필요 없잖아'라고 해버리면 될 일이긴 하지만 알라딘이건 개인 홈페이지건, 공개된 어딘가에 나의 의견을 쓰는 이상, 내 글을 읽는(읽을지도 모르는)이들의 기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난감한 것이 이런 때다. 내 맘엔 안들었는데 남들이 매우매우 좋아하는 작품인 경우, 내 느낌을 정말 솔직히 밝히기가 뭣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영화 '와..

딸기네 책방 2005.05.22

야만과 문명- '총균쇠'의 간단 버전.

야만과 문명,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잭 웨더포드. 권루시안(옮긴이) | 이론과실천 | 2005-05-16 치차가 갓 숙성되어 마시기에 알맞은 정도가 되면, 그 집 가족은 신의 눈 십자가나 아니면 그냥 흰색 깃발을 문간 위에 걸어둔다. 그러면 그 집은 그날부터 며칠동안 치차를 마실 수 있는 주점으로 변한다. 한 잔에 몇 센트를 낼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환영이다.인류학자인 저자가 수십년간 세계를 돌며 직접 보고 느낀 `야만과 문명의 스케치'다. 퓰리처상을 받았던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읽을 사람이라면 이 책도 즐겁고 편하게 읽을 수 있을 듯. 두 책 모두 인류 역사의 진화과정을 다루는 부분에서 모두 윌리엄 맥닐의 책(`전염병과 인류')를 근거로 삼고 있고, 내용도 많이 겹친다. 굳이 말..

딸기네 책방 2005.05.19

존재하지 않는 기사

존재하지 않는 기사 이탈로 칼비노 (지은이) | 이현경 (옮긴이) | 민음사 | 1997-11-01 아아아, 재미있었다!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을 놓고 이뤄지는 말장난. 어쩌면 이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위협.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데 존재한다고 사람들이 순진하게 믿고 있는 것에 대한 농담? 말장난 같지만 장난이 아닌 '존재의 모든 것'. 흰 갑옷은 멋지다. 수녀는 신심이 깊다.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바다밑을 걸어다닌다. 기사들은 싸우고 사랑하고 허풍을 떤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혹은, 내가 누구인지 반드시 말해야만 한다고 말한 자는 누구인가. 칼비노가 어째서 끝내주는 작가인지를 알겠다. 멋지다. 구질구질 설명을 붙일 것도 없이, 이것은 소설이 아니라 마술이다!

딸기네 책방 2005.05.19

역사서설- 서평 대신 느낌표

역사서설 al-Muqaddimah 이븐 할둔. 김호동 옮김. 까치글방 (이 책에 대해서 감히 서평 같은 걸 쓸 용기는 없다. 그러므로 이 글은 그냥 느낌을 나열하는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오래된’이라는 말이 주는 울림 같은 게 있다. 오래된 도시, 오래된 이야기, 오래된 책. 오래된 책을 읽고 싶었다. 그래서 고른 책 한권, 이븐 할둔의 역사서설. 14세기에 쓰였으니 이 정도면 누가 뭐래도 오래된 책에 속한다. 오래된 책을 읽는 즐거움, 오래전에 벌어진 신기한 이야기들을 듣는 즐거움, 그리고 지금과 똑같은 인간 군상들을 보면서 변치 않는 무언가를 확인하는 즐거움. `역사서설'은 그런 즐거움을 준다. 중세 이슬람의 이야기. 다마스커스나 알레포라는 말처럼, 마그레브라는 말에서도 묘한 향기가 난다. 둥근 지..

딸기네 책방 2005.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