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 1134

와이키키 브라더스, 수안보의 신파극

며칠전 '고양이를 부탁해'의 자극이 상당히 진했기 때문에 용기를 내서 영화를 또 봤습니다.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 저 원래 감독 이름 알고서 영화보는 일 별로 없는데요, 신문들이 하도 극찬을 해놨길래...이름을 외워 갔지요. '세친구'라는 전작이 있다고 하는데, 보지 않아서 비교는 못하겠구요. 여튼, 이 영화 보지 마세요. 각 신문의 영화담당 기자들에게 극심한 배신감을 느꼈답니다. 특히, 영화 팜플렛에 감상문이 한단락 소개돼 있던 한국일보의 박모 기자. "울다가 웃다가 어쩌구" 했다는데, 대체 이 영화보고 왜 울다가 웃었는지... 감정이 대단히 풍부한 모양입니다 그려. 세상에, 아직도 이렇게 상투적이고 고전적인 영화를 만들다니! 재미 되게 없더군요. 무거운 얘기, 밑바닥 얘기만 하면 신문에..

제주도에서

어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저 어디 갔나 궁금하셨죠?(별로 안 궁금했나?) 일요일 오전에 출발해서 어제 오후 1시 비행기를 타는 것으로, 3박4일간의 제주도 여행을 했는데요. 이번에는 저의 컨디션이 컨디션인지라, 사진은 별로 안 찍었어요. 덕분에 아지님도 혼자 몇장 박고 말았죠. 스캐너가 있어서 보여드리면 좋을텐데^^ 그래도 재미있었습니다. 먹는데에 중점을 둔 여행이었다고나 할까요. 가기 전에 먹고 싶은 것들을 생각해두고 갔거든요. 갈치구이, 옥돔구이, 전복죽, 해물뚝배기, 갈치조림 등등. 갈치조림은 못 먹었지만 다른 것들은 다 먹었구요, 또 제주 흑돼지(인지는 알 수 없지만) 구이랑 아주 맛있는 해물돌솥밥도 먹었답니다. 버터에 뜨거운 밥 비벼먹는 거,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맛있었습니다. 아휴, 또 먹고싶..

지금,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엄마, 우리 눈가에는 왜 털이 많아" "사막에 모래가 많아서." "발톱은 왜 두개야" "사막에서 잘 걸어 다니려고" "등에 있는 혹은 뭐고" "사막에서 오래 견디려고" "근데 왜 우린 동물원에 있어?" 늘 들르는 홈페이지에 갔다가 이 글을 발견했다. 다들 어디선가 한번쯤은 읽어보았을 내용일텐데. 그런데 갑자기, 아, 이게 웃긴 얘기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뭔가를 스스로에게 자문해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죄책감과 위화감, 긴장된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왜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일까. 어린 시절의 꿈대로라면 서른 한살의 나는 지금쯤 이집트의 어느 고분에라도 들어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이 아니라면 콘티키같은 뗏목을 타고, 혹은 짐 크노프의 기관차를 타고, 돛단배라도 타고서 어딘가에서 모험을..

배에 인터넷을 깔다

인체의 일부분을 기계화한 안드로이드, 생체기계 따위를 공상과학영화에서 많이 보신 분들! 여기에 있는 한 인간은 배에 인터넷을 깔았으니 참으로 대단한 네티즌이 아닌가요.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 여덟개의 손가락으로 배를 두드리고 있다. 인체의 일부(혹은 상당부분, 혹은 전부)가 로봇화한 생물에도 여러 종류가 있으니 1) 기능적 기계인간 이른바 '후크 선장 증후군'. 인체의 일부를 기계로 대체한 것. 그러나 기계의 몫은 어디까지나 상실된 신체기능을 보전하는데 국한될 뿐, 인간의 총체적 자아와 사고기능에까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한다. 다만 논란거리는, 기계의 범주를 어떻게 정하느냐 하는 것. 딸기의 독단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안경이나 보청기 따위를 몸에 장착해 신체 기능을 보완한 경우는 기능..

피해다니기

항상 하는 얘기지만, 그리고 결코 자랑은 아니지만 언제나 자기방어를 잘 한다고나 할까. 정확히 말하면 누군가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것은 아니고, 그저 스스로 마음 편하기 위한 기제들을 잘 만들어놓고 있다는 얘기다. 내가 '여우의 신포도 정신'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덕택에 언제나 '미련'이 없다. (좀 '미련'하기는 하지만^^) 돈들여 가방을 산 뒤에는 다른 가방 가게 앞을 지나가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내가 산 가방이 제일 예뻐보인다. 사람이니까, 언제나 '선택'을 해야 하는데 늘상 남보다 쉽게 선택을 하고도 여간해서는 후회를 하지 않는다. 내가 태어났을 때 별로 가진 것(이쁜 얼굴 같은 것^^)이 없어 보여서 하느님이 선물로 그런 남다른(?) 능력을 주셨는지도 모르겠다. 사는 게 재미있냐고 ..

은빛 여우

지난 주말에 조지 마틴의 판타지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를 열심히 읽었다. 얼마나 재미있게 읽었냐면, 내 몸통이 거의 소설 속으로 들어갔다. 판타지 소설에 흔히 나오듯이, 각 등장인물들에게는 가문의 문장이라는 게 있다. 나는 내 문장을 '은빛 여우'로 정했다. 왜냐? 멋있어보일 것 같아서. 얼음과 불의 나라는 동부, 서부, 북부, 남부로 나뉘어 있는데 주인공은 북부의 영주이다. 그러니 내 눈에 북부가 가장 멋있어 보일 수밖에. 실은 나는 추운 곳을 아주 싫어하는데, 주인공을 따라서 북쪽 나라에 살기로 했다. 주인공보다 더 훨씬 북쪽에. 북쪽 나라에는 언제나 늑대가 있다. 그러니 나도 내 문장을 늑대 종류로 정해야 하는데 주인공 집안의 문장이 바로 다이어울프(늑대)가 아닌가. 그래서 할 수 없이 나는 늑대..

내 그림자 중의 하나는

내 그림자 중의 하나는 모든 그림자가 그렇듯이 늘 나를 따라다니는데, 그림자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고 정답게 생각하는 놈이다. 내가 간간이 사색을 할 때마다 내 뒤에서 나를 흘낏흘낏 바라보는 이 그림자는 가끔씩 건방지게도, 내 등뒤에서 고개를 내밀고 내 손이 하는 일들을 지켜보기도 한다. 내가 지뢰찾기에 열중해 있을 때, 내가 컴퓨터 고스톱을 치고 있을 때, 내가 홈페이지에다 시덥잖은 소리를 쳐넣고 있을 때 무슨 재미난 구경거리나 생긴 것처럼 들여다본다. 어린 아이들은 손가락을 자기 코 앞에 갖다대고 그걸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눈알을 가운데로 모으는 놀이를 한다. 난 어른이 된 지금도 가끔 그 놀이를 하는데, 손가락을 동원하지 않고 맨 얼굴로도 코 주위에 눈알들이 모이게 할 수가 있다. 그림자는 생선처..

H2

나한테도 열일곱살이 있었을텐데, 대체 어디로 갔을까. 바다 건너온 만화책이 이렇게 마음을 흔들어놓다니. 내 마음은 지금 마구 흔들려서, 공중을 떠돌고 있다. 머릿속마저, 야구공처럼 어딘가를 한정없이 날아다니고 있다. 열일곱살. 그 나이를 떠올리면서 칙칙한 교실과 여고괴담 분위기의 유관순 초상화, 무거운 도시락통 같은 걸 떠올려야 된다는 건 비극이다. 그래서 난 좀 다른 걸 떠올려보기로 했다. 내가 열일곱살 때, 서울올림픽이 있었다. 그날, 친구와 올림픽공원에 갔었다. 9월17일, 날짜도 잊어버리지 않는다. 올림픽 개막식 날이었으니까. 올림픽 공원에 갔다는 것 외에는 딱히 내세울만한 추억거리가 그날 벌어졌던 것도 아닌데, 내 머리 속에는 열일곱살에 대한 그런 단편적인 기억들만 떠오른다. 조각조각 흩어진 기..

토요일밤에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다

오늘은 -벌써 어제가 됐나- 낮에 회사에서 대학 친구들과 이른바 '채팅'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든 MSN 메신저를 다운받으면 하루 종일 채팅을 할 수가 있다. 실은 '하루 종일'이라는 건 좀 맞지 않고, 내가 친구로 지정해놓은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인터넷에 접속해 있을 때면 아무 때고 대화를 나눌 수가 있다.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프로그램을 다운받았다. 회사 컴퓨터는 늘 켜져 있고 랜으로 연결돼 있으니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다. 그런데 '대화방'이라는 말과 '채팅룸'이라는 말은 참 다른 것 같다. 우리 말과 영어라서 다르다는 게 아니고, '채팅'은 잡동사니 수다를 떠는 것이지 '대화'라는 말로 번역되기엔 좀 그렇다는 의미다. 실제 내가 채팅한 내용은 어디까지나 '채팅'이었을 뿐이지 '대화'라고 ..

헬로 키티

모처럼 재미있게 주말을 보냈다. 뭐 특별히 '재미난' 일을 했던 건 아니지만, 나와 남편이 같이 주말에 집 밖으로 나갔다는 것만 해도 우리 부부에겐 대단한 일이었다. 더우기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모두 외출을 했으니,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이 역사에 남을 외출의 첫 걸음은 토요일 오후 2시30분에 이뤄졌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정도로 일찍 일어난 것은 딸기의 허즈번드에게는 거의 있기 힘든, 매우 드문 일이다. 외출 장소는 일산 킴스클럽. 그동안 장 보는 것을 게을리한 탓에 집에 모자라는 것들이 많았다. 내 바지와 남편의 트레이닝복(일명 땀복이라 부르는 것), 라면, 귤, 김, 햄, 싱크볼, 뒤집개를 샀다. 그리고 남편의 숙원사업이던 키티 인형을 샀다. 이걸 사줬더니 남편은 간만에 주말 내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