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6228

토요일밤에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다

오늘은 -벌써 어제가 됐나- 낮에 회사에서 대학 친구들과 이른바 '채팅'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든 MSN 메신저를 다운받으면 하루 종일 채팅을 할 수가 있다. 실은 '하루 종일'이라는 건 좀 맞지 않고, 내가 친구로 지정해놓은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인터넷에 접속해 있을 때면 아무 때고 대화를 나눌 수가 있다.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프로그램을 다운받았다. 회사 컴퓨터는 늘 켜져 있고 랜으로 연결돼 있으니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다. 그런데 '대화방'이라는 말과 '채팅룸'이라는 말은 참 다른 것 같다. 우리 말과 영어라서 다르다는 게 아니고, '채팅'은 잡동사니 수다를 떠는 것이지 '대화'라는 말로 번역되기엔 좀 그렇다는 의미다. 실제 내가 채팅한 내용은 어디까지나 '채팅'이었을 뿐이지 '대화'라고 ..

부유해진 세계, 가난해진 사람들

부유해진 세계, 가난해진 사람들 Richesse du Monde, Pauvrete's des Nations 다니엘 코엔 (지은이) | 주명철 (옮긴이) | 시유시 파리 제1대학 경제학교수인 다니엘 코엔의 저서입니다. 아시아 경제위기 이전에 쓰여졌다는 점과, 프랑스의 학자가 쓴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었습니다. 유럽인들은 가난한 나라들의 세계 무역시장 진출을 마치 무슨 야만인들의 침략이나 되는 양 경계하고 무서워하고 있는데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말고 내부적으로 잘 해라, 내부의 불평등을 없앨 궁리를 하는게 세계화에 대한 가장 올바른 대처방식이다, 그런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세계화-> 불평등 확산'의 직접적인 등식을 거부하고 있네요. 여기저기 쓴 글을 모아놓은 것 같아서 크게 재미있지는 않았는데 하..

딸기네 책방 2001.02.02

헬로 키티

모처럼 재미있게 주말을 보냈다. 뭐 특별히 '재미난' 일을 했던 건 아니지만, 나와 남편이 같이 주말에 집 밖으로 나갔다는 것만 해도 우리 부부에겐 대단한 일이었다. 더우기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모두 외출을 했으니,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이 역사에 남을 외출의 첫 걸음은 토요일 오후 2시30분에 이뤄졌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정도로 일찍 일어난 것은 딸기의 허즈번드에게는 거의 있기 힘든, 매우 드문 일이다. 외출 장소는 일산 킴스클럽. 그동안 장 보는 것을 게을리한 탓에 집에 모자라는 것들이 많았다. 내 바지와 남편의 트레이닝복(일명 땀복이라 부르는 것), 라면, 귤, 김, 햄, 싱크볼, 뒤집개를 샀다. 그리고 남편의 숙원사업이던 키티 인형을 샀다. 이걸 사줬더니 남편은 간만에 주말 내내 ..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The Lexus And the Olive Tree 토머스 L. 프리드먼 (지은이) | 장경덕 (옮긴이) | 21세기북스 뉴욕타임즈의 국제문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토머스 프리드먼이 세계화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잔소리를 늘어놨다. 세계화의 껍데기만 뒤집어쓰면 뭐든 되는 줄 믿고 있는 이른바 '글로벌리스트'들을 향한 잔소리가 아니고, '아직도 세계화될 준비가 안 된 팔불출들'에게 쏟아놓는 잔소리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혼다자동차의 인기 브랜드네임을 빗댄 '렉서스'는 세계화, 기술, 인터넷 등등을 뜻하는 것이고, '올리브나무'는 국가, 민족, 문화, 정서 따위를 지칭하는 말이다. 저자 자신이 유태인이다보니 올리브나무를 '옛스런 감정'의 대유물로 삼았나보다. 하필이면 이 책을 보고 있..

딸기네 책방 2001.01.16

Being Digital?

오늘 일요당직을 섰다. 어제도 일토였는데 일요일까지 회사에 가서 사무실을 지켰다. 귓속에서 아직도 히터 돌아가는 소리가 웅웅거린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루 종일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소음에 시달리다 돌아오니 이번엔 환청이 나를 괴롭힌다. 집에 혼자 앉아있는 순간에도 '조용히 있을' 수는 없다. 집에 들어와 눈치를 살펴보니 남편이 빨래를 해놓고 나갔다. 국을 데워 저녁을 먹을까 하고 있는 참에, 관리실에서 스피커로 내 머리를 때린다. 베란다로 이어져내려가는 하수구가 얼어붙으니까 세탁기 돌리지들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였다. 아뿔싸, 아랫층 베란다 하수구 다 얼었겠네... 방송 담당을 그만두고 나니 집에 와 앉아있는 것이 이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다. 내 귓전에서 웅웅거리는 가장 큰 소음 중의 하나인 ..

기울어진 아이

기울어진 아이 프랑수아 스퀴텐 | 보누아 페테르스 (지은이) | 정장진 (옮긴이) | 세미콜론 프랑스 만화인데, 참 멋집니다. 아주 섬세한 선으로 구성된 그림의 사실성과 원근감이 굉장히 멋있습니다. 베누아 페터즈 글, 프랑수아 스퀴텐 그림. 글 쓴 이나 그림 그린 이나 모두 존경스럽습니다. 마리라는 소녀는 부잣집 딸인데, 747년이라는, 어디 기준인지 알 수 없는 어떠한 연대의 사람입니다. 어느 곳인지는 모르지만 빈부 격차가 굉장히 심한 곳인가봅니다. 마리는 부유한 엄마 아빠랑 사는 동안 ‘홍당무’같은 존재였습니다. ‘아유, 쟤는 진짜 문제야’ 이런 소리들만 듣던 마리가 어느날 롤러코스터를 탄 뒤로 몸이 옆으로 기울어져버립니다. ‘기울어진 아이’라...일단 저는 ‘왜 기울어졌는지’에 대한 호기심을 접어둔..

딸기네 책방 2001.01.05

만화 이상의 만화, 잉칼

잉칼 1, 2 Une aventure de jhn Difool 뫼비우스 | 알렉산드로 조도로프스키 (지은이) | 이세욱 (옮긴이) | 교보문고 재미만 있으면 됐지, 만화가. 라고 이야기하기엔 이 만화는 너무 복잡하다. 그런데 무지하게 재미있다. 1. 줄거리 '존 디풀'이라는 별볼일없는 사립탐정이 '잉칼'이라는 존재를 손에 넣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모험에 이끌려들어가게 된다...라고 말하면 이 만화마저 '별볼일없는' 탐정만화로 전락시키는 것 같아 작가인 뫼비우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2. 그림 그동안 본 몇 안되는 유럽 예술만화들처럼 '예술'이라고 칸칸이 쓰여진 회화는 아니다. 인체 대생에서 강점을 보이는 전형적인 미국만화(그렇다고 '피넛츠'를 생각하면 절대 안 되지!)에 화려한 색채를 입힌 ..

딸기네 책방 2000.12.18

'제3의 길'과 '좌파'의 토론

어제 앤서니 기든스와 윌 허튼의 대담을 읽었습니다. 제목은 '세계화 시대의 자본주의는 어디로 갈 것인가'하는 거였는데요, 번역이 좋지 않아 읽는 재미가 떨어졌지만 '망원경으로 조망하는 효과'는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내용을 소개하면서, 저의 궁금증도 같이 얘기하고 싶네요. 재미있는 것은 두 사람의 태도, 즉 시각인데요, 앤서니 기든스는 다들 아시죠. 토니 블레어 노동당 정권의 브레인으로 꼽히는 사람이고, '제3의 길'이라는 노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윌 허튼은 사상적 스펙트럼에서 위치를 찾자면, 기든스보다 약간 왼쪽에 있는 사람인 듯 합니다. '옵서버'와 '가디언'지 편집장을 지냈습니다. 대담에서 드러나는 두 사람의 차이는 결국 '자본주의는 그 자체 좋은 것(혹은 나쁜 것)인가'하는 문제와, '노동자 계..

딸기네 책방 2000.12.18

괜한 걱정

어제 초등학교 친구 두 명을 만났다. '아이러브스쿨'에 가끔 들어가보지만, 사실 들어가봤자 나같은 사람은 별볼일 없다. 날 보고싶어하는 사람도 없고, 나 역시 특별히 보고싶은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면, 바로 그 두명이다. 두 친구와 용케 연락이 되어 어제 만났다. 종로3가 피카디리 극장에서 2가 쪽으로 오는 길에 오른쪽에 있는 롯데리아로 오라고 친구가 나에게 신신당부를 했었다. 찾아가긴 잘 찾아갔는데, 전철역에서 헤매느라 한 10분 늦었다. 하필이면 어제는 핸드폰을 집에 두고 나오는 통에 애들이 나 기다리면서 굉장히 걱정했다고 했다. 내가 안 나오는 것은 아닐까 하고. 난 어제 우리의 만남을 정말 눈 빠지게 기다렸다. 국민학교 졸업한 뒤에 중학교 다닐 때에도 동네에서 ..

앞뒤로 열린 가구

며칠 전 가구를 만들었다. 여성잡지에 단골로 등장하는 홍대앞 '내가 디자인하고 내가 만드는 가구'에 주문을 했는데, 가장 맘에 드는 건 역시나 '내가 디자인했다'는 점이다. 물론 그렇다 해서 멋지게 폼나는 이쁜 가구는 아니니까 사실 '디자인'이라는 말이 주는 어감을 떠올리면 안 된다. 그저 집성목을 이리저리 잘라 만든 보통 나무 가구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설계'를 하다보니 재미가 있었다. 내가 중점을 둔 것은 가구를 앞 뒤로 개방하는 것이었는데- 여느 가구처럼 벽에 붙여 세워놓는 것이 아니라 마루 가운데에 놓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높이 150센티, 폭 130센티, 너비 30센티. 맨 아랫칸은 현관 쪽으로 여닫이문을 달았고, 그 위의 두 칸은 마루 쪽으로 책꽂이를 냈다. 맨 위칸은 양쪽을 모두 '개방'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