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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놈 - 23장에 담긴 인간의 자서전

게놈 - 23장에 담긴 인간의 자서전 매트 리들리. 문과 공부를 한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나는 '비교적' 과학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관심의 이유는 지적 호기심, 혹은 지적 허영심, 쉽게 말하면 '알고 싶은 게 많아서' 이고, 어렵게 말하면 내가 물질 중심의 사고관을 갖고 있기 때문인데, 이 모든 이유들을 한마디로 하면 '알고싶어서'다. 인식의 지평을 넓힌다는 것. 올해에는 특히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소식들이 많았다. 내 호기심을 자극한 첫번째 것은 인간게놈지도가 완성됐다는 것. 인간게놈지도를 완성시킨 것은 두 집단인데, 하나는 '모험(벤처)적인 과학자' 크레이그 벤터가 이끄는 셀레라 제노믹스라는 '기업'이고, 또 하나는 '공리적인 과학자' 존 설스턴이 이끄는 HGP(인간게놈프로젝트)라는 단체..

마쓰모토 레이지, '니벨룽겐의 반지'

마쓰모토 레이지의 '니벨룽겐의 반지'(서울문화사) 1부와 2부를 읽었습니다. 마쓰모토 레이지 하면, 우리나라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우주전함 야마토, 하록선장, 그리고 은하철도 999. 국민학교 저학년 때 은하철도 999 만화책을 몇권 봤는데, 기분이 아주 이상하고 음침한 느낌이 들었다는 기억만 남아 있습니다. 재작년에 극장용 후속편을 비디오로 빌려다봤는데 영 꽝이더군요. 니벨룽겐의 반지는 아시다시피 독일의 전설이죠. 그리고 바그너(와그너?)의 오페라이기도 하구요. 마쓰모토는 바그너의 팬이라고 하는군요. 이 만화는 그 오페라를 모티브로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물론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는 아니고, SF물입니다. 첫 장면부터 저의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우주선입니다. 일본의 SF물은 메카닉..

딸기네 책방 2001.03.21

[스크랩] 에필로그 - 칼 세이건이 인류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

에필로그 - 칼 세이건이 인류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 (Billions and Billions) 칼 세이건 (지은이), 김한영 (옮긴이) | 사이언스북스 칼 세이건. 의 작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대중적인 우주과학자. TV에 많이 등장했고 각종 사안의 코멘터로도 애용됐던. 그 외에, 내가 이 사람에 대해 갖고 있는 지식은 없었다. 는 말 그대로 에필로그다. 과학저술가로서 명성을 떨쳤던 세이건이 골수암으로 죽어가면서 '인류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다. '마지막'에 방점을 찍는다면, 그가 남긴 에필로그가 환경파괴에 대한 경고문이라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저 광활한 우주를 바라보고 살았던 스타 과학자가 하고 싶은 얘기가 바로 환경 얘기였다. 물론 책 뒷부분에는 낙태에 대한 입장 등 기고문과 연설문들이 몇개 실..

기억창고에서 끄집어낸 해적판 이야기

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최근 읽은 만화 한 편을 소개하면. '하늘은 붉은 강가'는 바로 '나같은 사람', 나이도 잊은 채 어렸을 때 만화방에서 죽때리던 기억에 사로잡혀 헛된 망상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만화다. 여기서 잠시 딸기의 전사(前史)를 알아볼 필요가 있음. 국민학교 때부터 각종 만화방을 섭렵했었다. 그 때 가장 감명깊게 읽었던 만화 중의 하나가 바로 '나일강의 소녀' 시리즈였으니. 작가 이름은 당시 해적판에는 '유혜정'이라고 돼 있었음. 1부인 '나일강의 소녀'에 이어 '나일강의 여신', '나일강의 사랑', '나일강이여 영원히', 그리고 연속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나일강의 수수께끼'와 같은 후속편들이 줄줄이 따라붙는 대작이었다. 이 만화를 보고 고고학자가 될 결심을 했다니,..

H2

나한테도 열일곱살이 있었을텐데, 대체 어디로 갔을까. 바다 건너온 만화책이 이렇게 마음을 흔들어놓다니. 내 마음은 지금 마구 흔들려서, 공중을 떠돌고 있다. 머릿속마저, 야구공처럼 어딘가를 한정없이 날아다니고 있다. 열일곱살. 그 나이를 떠올리면서 칙칙한 교실과 여고괴담 분위기의 유관순 초상화, 무거운 도시락통 같은 걸 떠올려야 된다는 건 비극이다. 그래서 난 좀 다른 걸 떠올려보기로 했다. 내가 열일곱살 때, 서울올림픽이 있었다. 그날, 친구와 올림픽공원에 갔었다. 9월17일, 날짜도 잊어버리지 않는다. 올림픽 개막식 날이었으니까. 올림픽 공원에 갔다는 것 외에는 딱히 내세울만한 추억거리가 그날 벌어졌던 것도 아닌데, 내 머리 속에는 열일곱살에 대한 그런 단편적인 기억들만 떠오른다. 조각조각 흩어진 기..

리드뱅

Lie-De-Vin (리드뱅) Berlion (글) | Corbeyran(그림) | 비앤비(B&B) 여러 만화제에서의 수상경력이 가장 먼저 눈에 띄임. 첨엔 무슨 엽기물처럼 보이다가, 그 다음에는 이웃집 미스테리 여인을 둘러싼 탐정소설로 보이지만 결국에 가서 보면 한 소년의 '성장'을 둘러싼 이야기. 아주 재미있음. 엄마 없는 소년. 성격이 판이한 '고모들'과 함께 사는 고아. 얼굴엔 포도주색의 반점이 있음. '룰루'라는 개를 키웠음. 왜 하필 주인공은 개 이야기를 이렇게 많이 하는 걸까? 룰루가 어떤 끔찍한 경위로 인해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대체 무슨 엽기적인 이야기가 나올까 의심해가며, 대체 이 만화의 장르는 무엇일까를 생각했음. 이 때까지 나의 결론- 이건 탐정물이다! 이웃집 여인의 살인극 ..

딸기네 책방 2001.02.20

부유해진 세계, 가난해진 사람들

부유해진 세계, 가난해진 사람들 Richesse du Monde, Pauvrete's des Nations 다니엘 코엔 (지은이) | 주명철 (옮긴이) | 시유시 파리 제1대학 경제학교수인 다니엘 코엔의 저서입니다. 아시아 경제위기 이전에 쓰여졌다는 점과, 프랑스의 학자가 쓴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었습니다. 유럽인들은 가난한 나라들의 세계 무역시장 진출을 마치 무슨 야만인들의 침략이나 되는 양 경계하고 무서워하고 있는데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말고 내부적으로 잘 해라, 내부의 불평등을 없앨 궁리를 하는게 세계화에 대한 가장 올바른 대처방식이다, 그런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세계화-> 불평등 확산'의 직접적인 등식을 거부하고 있네요. 여기저기 쓴 글을 모아놓은 것 같아서 크게 재미있지는 않았는데 하..

딸기네 책방 2001.02.02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The Lexus And the Olive Tree 토머스 L. 프리드먼 (지은이) | 장경덕 (옮긴이) | 21세기북스 뉴욕타임즈의 국제문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토머스 프리드먼이 세계화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잔소리를 늘어놨다. 세계화의 껍데기만 뒤집어쓰면 뭐든 되는 줄 믿고 있는 이른바 '글로벌리스트'들을 향한 잔소리가 아니고, '아직도 세계화될 준비가 안 된 팔불출들'에게 쏟아놓는 잔소리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혼다자동차의 인기 브랜드네임을 빗댄 '렉서스'는 세계화, 기술, 인터넷 등등을 뜻하는 것이고, '올리브나무'는 국가, 민족, 문화, 정서 따위를 지칭하는 말이다. 저자 자신이 유태인이다보니 올리브나무를 '옛스런 감정'의 대유물로 삼았나보다. 하필이면 이 책을 보고 있..

딸기네 책방 2001.01.16

기울어진 아이

기울어진 아이 프랑수아 스퀴텐 | 보누아 페테르스 (지은이) | 정장진 (옮긴이) | 세미콜론 프랑스 만화인데, 참 멋집니다. 아주 섬세한 선으로 구성된 그림의 사실성과 원근감이 굉장히 멋있습니다. 베누아 페터즈 글, 프랑수아 스퀴텐 그림. 글 쓴 이나 그림 그린 이나 모두 존경스럽습니다. 마리라는 소녀는 부잣집 딸인데, 747년이라는, 어디 기준인지 알 수 없는 어떠한 연대의 사람입니다. 어느 곳인지는 모르지만 빈부 격차가 굉장히 심한 곳인가봅니다. 마리는 부유한 엄마 아빠랑 사는 동안 ‘홍당무’같은 존재였습니다. ‘아유, 쟤는 진짜 문제야’ 이런 소리들만 듣던 마리가 어느날 롤러코스터를 탄 뒤로 몸이 옆으로 기울어져버립니다. ‘기울어진 아이’라...일단 저는 ‘왜 기울어졌는지’에 대한 호기심을 접어둔..

딸기네 책방 2001.01.05

만화 이상의 만화, 잉칼

잉칼 1, 2 Une aventure de jhn Difool 뫼비우스 | 알렉산드로 조도로프스키 (지은이) | 이세욱 (옮긴이) | 교보문고 재미만 있으면 됐지, 만화가. 라고 이야기하기엔 이 만화는 너무 복잡하다. 그런데 무지하게 재미있다. 1. 줄거리 '존 디풀'이라는 별볼일없는 사립탐정이 '잉칼'이라는 존재를 손에 넣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모험에 이끌려들어가게 된다...라고 말하면 이 만화마저 '별볼일없는' 탐정만화로 전락시키는 것 같아 작가인 뫼비우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2. 그림 그동안 본 몇 안되는 유럽 예술만화들처럼 '예술'이라고 칸칸이 쓰여진 회화는 아니다. 인체 대생에서 강점을 보이는 전형적인 미국만화(그렇다고 '피넛츠'를 생각하면 절대 안 되지!)에 화려한 색채를 입힌 ..

딸기네 책방 2000.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