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이란을 움직이는 ‘막후의 1인자’ 하메네이

딸기21 2009. 6. 15.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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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끝났지만 이란은 여전히 시끄럽다. 테헤란 시내에서는 폭동진압경찰과 민병대가 거리로 나와 개혁을 요구하는 젊은이들의 시위를 진압하고 있다.
정부는 서방 취재진들을 내보내고 외국 방송 위성수신을 막기 시작했다. 야당과 개혁파 인사 수백명이 체포됐다. CNN은 14일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개혁파 후보였던 미르 호세인 무사비를 향해 “신변안전을 보장 못한다”며 위협했다고 전했다. 

선거 직전 불었던 개혁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탄압 조치들이 아마디네자드 혼자의 뜻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고 보는 이들은 없다. 이 사태 뒤에 있는 것은 ‘벨라야트 이 파키르(최고지도자)’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다.

시사주간 타임은 “아마디네자드의 말 많은 승리 뒤에는 하메네이가 있다”고 보도했고, 미국의 이란 전문가 메흐디 할라지는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이번 대선결과는 하메네이의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정부가 상대해야 하는 것은 감정적이고 화 잘내는 아마디네자드가 아니라 고도의 정치력을 가진 하메네이라는 것이다.
국제사회가 이란 핵문제를 풀려면 이란의 복잡하면서도 강고한 정치구조를 알아야 하고, 무엇보다 하메네이를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고 분석가들은 말한다.


최고지도자는 아야툴라 호메이니의 유지를 잇는 인물로서, 헌법상의 최고권력자다. 최고권력기구인 혁명수호위원회 위원 12명 중 6명을 지명하며 사법부의 수장과 군사령관, 국영 언론사 사장 등을 임명할 권한을 갖는다. 종신직인 최고지도자는 4년 임기의 직선 대통령 위에서 군 통수권을 갖고 외교정책을 결정한다.
하지만 제3세계 독재국가들의 세습권력과는 다르다. 이란 정치는 비선출직 성직자 그룹과 선출직 정치인들이 결합된 이중 권력구조로 되어있다. 최고지도자가 사망하면 전문가위원회라 불리는 기구에서 후임을 뽑는다. 따라서 이란 정치는 서방이 비난하는 ‘전제정치’와는 다르고 독특한 과두체제로 봐야한다는 시각이 많다.

현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소수민족인 아제르계이지만 파르시(이란어)는 물론 아랍어에도 능통하다. 호메이니 혁명 때 주역으로 나섰고, 81~89년 성직자로서는 처음으로 공직에 나서 대통령을 지냈다. 한 집안 출신인 개혁파 무사비는 같은 기간 그 밑에서 총리를 지낸 묘한 인연이 있다. 89년 호메이니가 사망했을 당시 하메네이는 그랜드 아야툴라(최고위급 성직자)가 아니었지만 전문가위원회에서 후계자로 낙점됐다.

최고위 성직자도 아니고 호메이니 같은 카리스마도 없던 하메네이가 지금껏 권력을 유지해온 비결은 ‘세력균형’과 ‘네트워크’다. 그는 대통령 시절부터 주요 이슬람 기관의 수장들이나 군 지도부에 인맥을 쌓았다.

호메이니가 종교적 권위에 의존했다면 하메네이의 무기는 정치력이다. 이란의 비판적 언론인 에르반드 아브라하미안에 따르면 “그는 언제나 누군가를 견제한다”. 개혁파 집권시절에는 번번이 개혁조치의 발목을 잡고 언론을 통제했다. 아마디네자드가 집권한 뒤로는 강경 돌출발언을 비판하는 역할을 했다. 아마디네자드가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워야 한다”고 했을 때 하메네이는 “이란은 세계 어떤 나라도 그런 식으로 적대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달초 오바마가 이집트 카이로대학에서 이슬람권을 상대로 연설하자 칭찬을 했지만 “이란에서 벨벳혁명(체코식 무혈혁명)은 안된다”며 개혁 바람을 내리눌렀다. 권력을 한손에 쥐고 있지만 최소한의 민주주의가 이슬람 공화국을 유지하는 안전장치라는 것을 알고 있다. 2004년 하메네이는 이슬람권에서 최초로 줄기세포 연구를 지시했다. 이듬해에는 “이슬람은 핵무기에 반대한다”는 파트와(포고령)를 냈다. 2007년에는 아마디네자드에게 민영화 경제 개혁을 촉구했다.

포퓰리스트인 아마디네자드는 하마네이와 코드가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선이 끝나자 하메네이는 “이란 국민들의 민주적 승리”라며 아마디네자드의 손을 들어줬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란은 핵 프로그램을 계속 추진할 것이며, 주권 침해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 첫번째다. 두번째는 허리를 굽혀가며 대미 관계개선에 나서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오바마 붐에 밀려서가 아니라 자신의 속도대로 결정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지역 패권 욕심도 그대로다. 헤즈볼라와 하마스를 계속 지원할 것이고, 이라크·아프가니스탄·시리아를 향해 영향력을 확대해나갈 것이다. ‘서방의 용서’가 아닌 이란 자체의 저력으로 국제사회에 영향력을 미치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타임은 “하메네이는 때로는 아마디네자드를 내세우고 때로는 억눌러 가며 미국과 기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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