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163

[이라크]함무라비는 없다

말로만 들었던 바빌론, 그 바빌론에 도착했다. 타리크도 길을 모르는지 물어물어 찾아갔다. 말로만 듣던 이슈타르의 문(사진). 파랗게 칠한 벽돌에 사자를 돋을새김하고 노랗게 칠한 그 문은 물론 '가짜'다. 진짜 이슈타르의 문은 독일에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지만 어쨌든 여기는 바빌론이 아닌가. 고대 수메르의 수도,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네부차드네사르왕의 공중정원이 있는 곳. 대추야자나무가 있는 정원을 지나 진흙벽돌로 만들어진 성곽으로 올라갔다. 사담 후세인이 옛날의 공중정원을 80년대에 복원해놓았다. 복원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멋있었다. 황량한 분위기와 맞아떨어지는 곳이었다. 벽돌은 진흙으로 만들었는데 굽지 않고 그냥 햇볕에 말린 것 같았다. 날은 몹시 더웠다. 낮기온이 40℃까지 올라..

[이라크]암만에서 바그다드까지

요르단의 암만에서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까지는 총 950km. 거의 대부분 사막으로 이뤄진 이 길을, GMC밴을 렌트해 달려가기로 했다. 밴의 운전사는 이라크 국경이 가까워오자 가게에 들러 바그다드의 가족에게 가져갈 물건들을 잔뜩 사들였다. 콜라와 초콜릿 따위를 하나 가득 실은 차는 요르단-이라크의 접경인 케라메에 도착했다. 허름한 단층건물로 된 입국심사장에 들어서 맨 처음 부닥친 것은 에이즈 검사였다. 에이즈를 '동성애자들의 죄악의 결과물'로 간주하는 이슬람권에서도 유독 이라크는 입국시 에이즈 검사를 위한 채혈을 의무화하고 있는 나라다. (지난해 세계에이즈 총회에서 이슬람권은 총회결의안에 동성애가 지탄받아야 할 도덕적 죄악임을 명시하자고 주장했었다. 북유럽 등의 거센 반발로 결이안에 그런 문구가 들어가..

투바: 리처드 파인만의 마지막 여행

투바: 리처드 파인만의 마지막 여행 Tuva or Bust!: Richard Feynman's Last Journey 랠프 레이턴 (지은이), 안동완 (옮긴이) | 해나무2 언제부터인가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내게서 떠나가지 않는다. 오래동안 생각해오던 자금성에도 가고 싶고, 마음 깊숙한 곳에 들어있는 이집트, 이란, 이라크, 터키에도 가보고 싶고, 시원한 밤바람 맞으러 홍콩에도 가보고 싶고, 축구 보러 스페인에도 가고 싶고. 현실에서 떠나고 싶은 생각과는 좀 다르지만 어디에든 가고 싶다. (랠프 레이튼. 해나무刊)이 가져다준 위안이 있다면, 굳이 '떠나지' 않아도 여행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리교사인 랠프 레이튼과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그리고 몇몇 친구들은 우연히 투바라는 곳에 가고 싶다는..

[해남에서 화순으로] 오지여행+답사여행

해남의 산들은 지리산 노고단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노고단의 산 기운이 서쪽으로 치달려 영암의 월출산을 일으키고(해남에서 화순으로 옮겨가는 길에 월출산을 멀리서 바라봤는데 아주 멋있었다) 해남반도에 들어서서 대둔산, 달마산, 두륜산 같은 산들을 세운 뒤 송지면 갈두리(땅끝마을)에서 제주 한라산을 바라보며 바다로 들어가 자취를 감춘단다. 대둔사에서 땅끝마을까지 가는 2시간 가까운 드라이브는 아주 기분좋은 여정이었다. 이라는 말이 주는 뾰족하면서도 삭막한 느낌과는 전혀 다른, 따뜻한 들판과 아담한 산들. 가는 길에 송호해수욕장에 들러 잠깐이나마 몸을 담그기까지 했다. 여름휴가 동안 어쨌든 물놀이 한번은 해본 셈이다. 정작 땅끝마을은 실망스러웠다. 그렇겠거니 생각은 했지만 횟집과 식당들, '별볼일 없는' 바다...

[해남 대흥사] 구경 잘 하고 천벌 받을뻔함.

8월27일. 별볼일 없는 산채비빔밥을 먹고 대둔사(大屯寺)로 올라갔다. 91년 학과 답사 때 두륜산 대둔사를 '구경' 왔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절 이름이 대흥사(大興寺)였는데 92년에 대둔사로 바뀌었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도 이름이 '정리'되지 않은 듯, 와 라는 이름이 표지판마다 혼용돼 있었다. 위치는 한반도 남쪽 끝자락이지만 이름만은 스케일 크다. 백두산의 두(頭)자와 곤륜의 륜(崙)자를 따서 두륜산이다. 원대한 이름과 달리 높이는 703m에 불과하다. 두륜산을 옛날 사람들은 이란 뜻의 으로 불렀는데 여기서 절 이름이 나와서 , 이라고도 했단다. 서산대사 유물이 보관돼 있다는 것이 이 절의 제일 큰 자랑거리인 모양이었다. 우리나라의 좋다는 어느 곳이건 가면 무슨무슨 8경이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데, ..

[변산반도] 딸기투어 타임테이블

8/26(월) 11시20분 집에서 출발. 만남의 광장에서 점심과 간식을 먹고 오후 1시 서울 톨게이트 통과. 서해대교를 건너다-기대를 많이 했는데, 정작 건너는 동안에는 다리 난간을 하도 높게 해놔서 바다를 감상할 수 없었다. 91년식 오래된 소나타 클래식(아지님은 오나타라고 부른다)에게 어쩐지 이번 여행은 무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초장부터 들었다. 덜덜덜덜...운전대를 잡고 있는 아지님 손이 수전증처럼 떨릴만큼 차체가 떨렸다. 이게 왜 이럴까. 군산휴게소 못 미쳐서, 갑자기 차가 레코드판 바늘 튀듯이 퐁퐁 튀더니 아까 그 떨림과 시끄럽던 소리가 조용-해졌다. 무언가를 밟은 것이 틀림없다고,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차 뒤편으로 무언가가 옆 차선에 떨어져 있는 것이 거울에 비쳤다. 잠시 뒤 나는 깨달..

제주도에서

어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저 어디 갔나 궁금하셨죠?(별로 안 궁금했나?) 일요일 오전에 출발해서 어제 오후 1시 비행기를 타는 것으로, 3박4일간의 제주도 여행을 했는데요. 이번에는 저의 컨디션이 컨디션인지라, 사진은 별로 안 찍었어요. 덕분에 아지님도 혼자 몇장 박고 말았죠. 스캐너가 있어서 보여드리면 좋을텐데^^ 그래도 재미있었습니다. 먹는데에 중점을 둔 여행이었다고나 할까요. 가기 전에 먹고 싶은 것들을 생각해두고 갔거든요. 갈치구이, 옥돔구이, 전복죽, 해물뚝배기, 갈치조림 등등. 갈치조림은 못 먹었지만 다른 것들은 다 먹었구요, 또 제주 흑돼지(인지는 알 수 없지만) 구이랑 아주 맛있는 해물돌솥밥도 먹었답니다. 버터에 뜨거운 밥 비벼먹는 거,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맛있었습니다. 아휴, 또 먹고싶..

[2000 가을, 홍콩] 그 밖의 것들

☆ 홍콩의 공동묘지 이 사람들이 한국의 공동묘지를 본다면 무지하게 호사스럽다고 할 겁니다. 지나가면서 홍콩의 묘지를 구경했는데, 봉분 없는 대리석 묘석에 묘비만 있는 형태였습니다. 무덤과 무덤 사이의 간격이 아마 15-20cm 밖에 안 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발 디딜 틈도 없이 빽빽하게 붙어있어서 꼭 무슨 새집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그것도 산을 깎아 만든 계단식 밭같은 모양으로요. 홍콩사람들에게는 성묘(?)같은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일 것 같습니다. ☆ 역시나 쇼핑천국 무슨 거리에 그렇게 에스컬레이터가 많은지... 도시 전체가 거대한 쇼핑몰임을 실감케 하는 것이 바로 그 에스컬레이터들입니다. 하다못해 육교같은 노천에까지(물론 지붕은 있지만) 에스컬레이터가 놓여있습니다. 어쨌든 다니기는 편한데, 이 사람..

[2000 가을, 홍콩] 친절한 홍콩사람들

☆ 차비를 대신 내준 여행사 직원, 잔돈을 치러준 출근길 아가씨 다른 곳을 여행해보지는 못했지만, 이것만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홍콩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들일 겁니다. 홍콩섬에 처음 도착했을 때 전철역에서 호텔까지 어떻게 찾아가야 할지를 몰라 한참 헤맸습니다. 전철역 안 지도앞에서 지나가는 아가씨를 붙잡고 무작정 호텔 이름을 대면서 물어봤는데 이 아가씨가 마침 어느 여행사의 직원이었습니다. 버스 정류장까지 안내해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버스 기사에게 저의 목적지를 얘기해주더니 차비까지 대신 내주는 겁니다. 더 놀라운 일은 버스에서 내려서 일어났습니다. 운전기사의 지시(?)에 따라 버스에서 내리는데 어떤 멀쩡한 총각이 호텔까지 저를 데려다주는 겁니다. 좀전의 그 아가씨가 하는 말을 듣..

[2000 가을, 홍콩] Rice + Noodle = ?

☆ Rice + Noodle = ? 사람들이 딤섬 얘기를 할 때부터 짐작은 했지만, 역시 저는 '여행체질'이 아닌 모양입니다. 홍콩에 도착한 첫날, 열심히 애드미럴티 지역을 헤매고 다니다가 퍼시픽 플레이스(Pacific Place)라는 큰 쇼핑몰의 식당가에 도착했습니다. 중국식, 일본식, 태국식 등등 여러나라의 음식을 뒤섞어서 잡탕으로 파는 코너들이 있는데 쭉 돌아보고 나서 가장 덜 느끼할 것 같은 Singapore Fried Rice Noodle을 주문했습니다. 저는 'rice + noodle = 밥과 국수'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왠걸, 볶은 쌀국수가 나오더군요. 새우와 청경채(인지 아닌지 잘 모르지만) 볶은 것 따위를 섞어서 국수랑 같이 볶은 음식인데, 28달러를 주고 사서 5달러어치밖에 못 먹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