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8

왕의 서사시, 샤나메 (5) 이리즈의 죽음

밤의 장막이 걷히자 형들은 이리즈의 천막으로 갔다. 이리즈는 그들을 반갑게 맞았지만 형들은 인사 대신 동생을 추궁하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투르가 말했다. "어째서 어린 네가 연장자인 우리 위에 군림하고 있는 거냐?" 이 말을 들은 이리즈가 대답했다. "권력에 굶주린 형님들에게 이르노니, 행복해지고 싶다면 먼저 평화를 얻으십시오. 저는 이란의 주인이 되고싶어하거나 왕좌를 욕심내는 것이 아닙니다. 불화를 가져오는 권력이라면, 결국은 눈물로 끝을 맺게 될 겁니다. 우리가 평화롭게 지내는데 도움이 될수 있다면 저는 이란의 왕좌에서 기꺼이 내려올 것입니다. 형님들이 저로 인해 괴로워한다면, 저는 결코 세상을 얻으려 욕심내지 않을 겁니다. 제 마음은 비천한 저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말하고 있답니다." 사악한 ..

왕의 서사시, 샤나메 (4) 아들들의 싸움

아들들의 마음을 다 시험해본 페리둔은 사라졌다가 다시 아버지로 모습을 바꿔 전사들과 코끼리들과 악대를 이끌고 나타났다. 페리둔은 황소머리를 한 창을 손에 잡고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카와니 Kawanee (카와의 깃발)를 머리 위에 높이 흔들었다. 아들들은 말에서 뛰어내려 아버지에게 달려가 무릎을 꿇었다. 군악대가 징을 치고 트럼펫을 부니 기쁨의 노랫소리가 울려퍼졌다. 페리둔은 아들들을 일으켜세워 이마에 입을 맞추고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을 치하해주었다. 페리둔은 왕궁에 돌아와 신에게 자식들을 위한 기도를 올린 뒤 세 아들을 불렀다. 찬란한 보좌(寶座)에 아들들을 앉힌 페리둔은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내 아들들아,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불길을 뿜던 사나운 용은 바로 너희들의 아비..

왕의 서사시, 샤나메 (3) 페리둔의 반란

사람들은 카와를 둘러싸고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카와는 군중을 이끌고 깃발을 휘날리며 도시를 벗어나 페리둔이 살고 있는 곳을 향해 몇날며칠을 행진했다. 그러는 동안 8년이 스무번 지나갔다.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자 페리둔은 알베르즈 산을 내려와 어머니와 가족들의 행적을 찾았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젬시드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사실과, 조하크의 악행들을 일러주었다. 페리둔이 말했다. "저 악마를 이 땅에서 몰아내고 악마의 궁전을 먼지로 만들어버리겠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젊은 혈기로 나서지 마라. 온 세상을 쥔 자에게 어떻게 맞서겠다는 것이냐"며 페리둔을 말렸다. 그러나 아들을 오래 붙잡아앉힐 수는 없었다. 카와가 이끄는 군중들이 창 끝에 깃발을 높이 매어달고 페리둔을 향해 오고 있었다. 페리둔은 군중..

왕의 서사시, 샤나메 (2) 뱀의 왕 조하크

아흐리만이 바랐던 대로 세상은 황폐해졌다. 뱀들은 날마다 자라났다. 세상은 두려움에 떨었다. 사람들은 노예처럼 움츠렸다. 미덕은 사라지고 사악한 욕망이 자리를 채웠다. 타시스에 적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막강한 왕이 있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왕과 귀족들은 젬시드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조하크를 샤 Shah 로 칭송하게 됐다. (‘샤’는 왕 king 보다 훨씬 윗전의 인물이다. 똑같이 왕으로 번역하면 헛갈릴 것이기 때문에 그냥 ‘샤’로 쓴다) 아라비아와 페르시아의 군대가 쳐들어오자 젬시드는 도망쳐버렸다. 젬시드는 50년이 20번 반복되는 동안 뱀의 분노를 피해 숨어 다녔지만 조하크에게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조하크의 부하들은 카타이(중국)의 바닷가에서 젬시드를 찾아내 반토막을 내고 조하크에게 그 사..

왕의 서사시, 샤나메 (1) 아흐리만의 유혹

(HELEN ZIMMERN 영역본을 대충 옮김.) 페르시아의 왕좌에 올랐던 첫번째 임금 카이우메르스 Kaiumers 는 세계의 지배자. 그는 산맥에 거처를 잡고 스스로는 물론 백성들에게도 호랑이가죽 옷을 입혔고, 그때까지 사람들이 알지 못했던 의복 만드는 기술과 자양분을 섭취하는 모든 방법을 자세히 가르쳤다. 인간과 모든 뭍짐승들이 그에게 와 복종을 맹세했고 그의 손에서 법률을 받아갔다. 그의 광영은 태양과 같았다. 악의 세력인 아흐리만 Ahriman the Evil 은 왕의 광영이 퍼져가는 것을 보고 질투심에 달아올라 세계의 왕좌를 빼앗을 궁리를 한다. 아흐리만은 막강한 힘을 가진 아들 디브 Deev 들과 함께 군대를 모아 카이우메르스와 그 아들 사이아무크 Saiamuk 를 쳐부수고 왕국을 파괴하기로 ..

석유 시대 언제까지 갈 것인가

석유시대,언제까지 갈 것인가 이필렬 (지은이) | 녹색평론사 | 2002-10-31 내용으로만 치자면 이 책에 별 다섯개를 주고 싶다. 솔직히 글솜씨는 좀 아니올씨다...싶은 것이, 이필렬이라는 분은 작가도 아니고 저널리스트도 아니고 과학자다. 틀렸다. 이 분은 국내에선 꽤 유명한 환경운동가다. 약력을 보니 '베를린 공대 졸업(디플롬 화학자)'라고 써있다. 디플롬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독일 대학의 무슨 학위제도 비슷한 것인 것 같고, 요는, 이 분은 화학을 전공한 분이라는 얘기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에너지대안센터라는 곳이 있다.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해 연구하고 캠페인하는 환경단체인데 작년인가 올초인가 환경운동연합에서 분리되어 나왔다. 거기 대표로 계신 분이 바로 이필렬선생이시다. 센터의 어느 분과 이..

딸기네 책방 2005.04.18

나쓰메 소세키, '그후'

그 후 それから 나쓰메 소세키 (지은이) | 윤상인 (옮긴이) | 민음사 | 2003-09-25 나쓰메 소세키라는 작가는 섬세한 사람 같다. 이 사람이 그려낸 19세기말 일본의 풍경은 희한하게도 정적이다. 일본이 가장 역동적으로 움직였던, 유신 세력과 봉건주의자들 사이에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고 국제무대에서 일본이 용트림을 하려하던, 서양 문물이 마구 쏟아져들어오고 일본의 '선각자'들이 서양을 따라잡으려고 기를 쓰던 그 때에, 나쓰메 소세키가 그려낸 일본의 한 지식인은 '느림의 미학'을 구가한다. 아버지 돈으로 먹고 놀고 우아방탕한량스런 생활을 즐기며 유유자적 산책과 사색으로 시간을 보낸다. 제법 오래전에 쓰여진 소설인데 어쩐지 새롭다. 이노무 주인공 꼬락서니는 전혀 내 맘에 안 들지만, 그를 통해 작가가..

딸기네 책방 2005.04.18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채인선 (지은이) | 이억배(그림) | 재미마주 | 2001-01-02 '참 재미있다' 이런 허망한 제목을 붙이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 책의 리뷰는 어쩔 수 없이 상투적인 말로 시작하지 않을 수 없겠다. 네 살 아이가 읽기엔 조금 수준이 높은 책 아닐까 싶기도 했는데, 아이랑 같이 읽다보니 엄마의 기우였다는 걸 알았다. 그림도 줄거리도 '한국적'이다. 그림에서 어딘가모르게 해학 같은 것이 묻어난다. 세상에, 만두속을 그렇게 많이 만들면 어떡해요, 할머니! 만두를 너무너무너무너무 크게 만들면 어떻게 먹나요? 할머니랑 동물들의 만두 준비하기, 빚기, 끓이기, 먹기. 앞으로 두고두고 설날 전에 아이랑 같이 이 책을 읽어야겠다.

딸기네 책방 2005.04.18

색깔나라 여행

색깔 나라 여행 제롬 뤼이이에 (글) | 제롬 뤼이이에 (그림) | 크레용하우스 | 1999-04-28 꼼꼼이는 이미 네 살이어서 색깔을 구분하는 단계는 진작에 거쳤지만, 색깔 이야기를 좋아한다. 색깔 그림책만 해도 '야옹이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아기물고기 하양이 색깔여행' 등등 몇권을 봤었다. 이 책은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사 준 색깔책. 유아용으로 읽힌다면, 앞서 언급한 다른 색깔 책들을 먼저 보여주고 나서 이 책을 보여주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일본에서 산 팝업북 중에 색깔이 아주 곱게 나온 것이 있어서 그걸로 우선 색깔공부(?)를 했고, '야옹이가~'와 '하양이'를 봤었다. 꼼꼼이가 보았던 색깔책들을 굳이 순서대로 구분한다면 팝업북->하양이->야옹이->그리고 이 책 순서로 보여주는 편이..

딸기네 책방 2005.04.18

모래의 여자

모래의 여자 沙の女아베 코보 (지은이) | 김난주 (옮긴이) | 민음사 | 2001-11-10 너무나 '본질적'인 얘기를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버리는 작가. 이런 책을 읽을 때면 작가라는 사람들이 무서워진다. 그들이 툭툭 던진(사실은 고도의 계산 속에서 나왔을 터인) 말 한마디 한마디에 내 몸뚱아리가 저만치 내팽개쳐지는 듯한 기분이 든단 말이다. 소설을 손에 쥐기 전,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은 이에게 물어봤었다. "재미있어?" "응." 대답하는 사람의 말투에 잠시 뭔가 착잡한 기운이 스쳐지나갔다. 어떤 책일까 궁금했다. 일단 나는 이 작가에 대한 사전 지식이라고는 한 알갱이도 없었다. 다만 이 책의 제목을 들었을 때 어쩐지 끌린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 소설은 금새 읽혔다. 순식간에, 정확히 말하면..

딸기네 책방 2005.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