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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세상]김성주, 김광석, 가족

"결혼은 1년에서 350~360일은 정말 행복한데, 나머지 열흘이 그렇게 고통스러울 수가 없다. 명절, 날카로운 말끝이 가슴에 닿아 생채기를 냈다. 가족을 설득하고 화내고 싸우는 일이 지겨워진 우리 부부는 왜 결혼이란 제도권으로 들어온 건지 후회가 된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몇 번 반복하면 이 짓이 익숙해질까." 지인은 페이스북에 저런 글을 올렸다. 결혼과 더불어 생기는 가족에 대한 고민들. 추석이 낀 달에는 한방병원에 찾아가 ‘화병’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연중 가장 많고, 그런 이들 가운데 여성이 남성의 4배라는 언론 보도도 눈에 띄었다. 여느 해보다 길었던 추석 연휴는 지나갔다. 가족의 존재 의미를 고민하게 하는 명절은 끝났다. 추석을 앞두고 가족을 다시 곱씹게 만든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첫째는 방송..

현대 아프리카의 역사

현대 아프리카의 역사 A History of Modern Africa: 1800 to the Present리처드 J. 리드. 이석호 옮김. 삼천리 아프리카의 지리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한 뒤 19세기 이후 주요 지역들의 역사를 훑는 책이다. 두께가 상당하다. 지역과 테마가 교차하게 돼 있어서 좀 어수선한 느낌이 들 수 있지만 거대한 대륙 전반을 다루는 것이니... 서방의 대륙 침략과 땅 나눠먹기가 진행되는 사이 아프리카인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초점을 맞춘 것이 눈에 띈다. 어느 식민지에서나 비슷한 사정이 있었겠지만 아프리카에서도 일부는 열강에 저항했고, 일부(혹은 대다수)는 그저 희생됐거나 협력했거나 열강의 움직임 속에서 발 디딜 터를 잡기 위해 애썼다. 협력하면서도 밀고당기기를 했고, 얻어낼 것을 얻어..

딸기네 책방 2017.10.08

아픔이 길이 되려면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김승섭 교수의 책 (동아시아)을 읽었다. 이미 김 교수의 인터뷰를 읽으며 감동을 받았는데, 책을 읽어보니... 정말 너무나 좋다. 아프고 슬프지만 새겨 들어야 할 이야기들. 사회적 폭력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 못합니다. 그 상처를 이해하는 일은 아프면서 동시에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우리 몸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때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그 상처까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몸은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22쪽) 저자는 사회의 건강이 개인의 몸에 새겨진다고 말한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사회역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폴 파머를 비롯한 외국 학자들의 책을 보면서, 국..

딸기네 책방 2017.10.08

길 가다가 변을 당할 확률이 높은 나라들

보행자 사고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관련된 통계를 찾느라 OECD 데이타 페이지에 들어가봤다. 저기 나와 있는 나라별 숫자는 '길 가다 변을 당할 확률'이랄까, 그런 걸 일종의 지수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OECD의 설명을 빌면 길에서 교통사고로 다치거나 그 자리에서 숨지거나 혹은 사고로 30일 이내에 숨지는 사람 숫자와 건수, 주민 수와 교통수단 수를 기준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교통사고뿐 아니라 '길에서 자폭테러를 당할 경우' 같은 것들도 모두 반영한 수치라고. 수치들을 들여다보니 여러가지가 눈에 띈다. 조지아는 독립한 뒤에 계속 거리 상황이 안 좋아졌구나. 러시아는 늘 나빴고 지금도 나쁘구나. 그나마 나아진 것이 저 정도. 인도는 차량이 늘면서 갈수록 악화. 한국은 국가의 경제수준에 비해 꾸준히 -_-..

중간착취자의 나라

중간착취자의 나라이한. 미지북스 비정규직 문제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다. 아니, 따지고 들면 전 세계의 모든 문제는 이리로 귀결된다 해도 될 것 같다. 노동력이 값싼 물건이 되고, 더불어 일을 하는 사람도 값싼 상품이 돼버린. 이 책의 저자는 변호사다. 책은 비정규직이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부정적 효과,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이며 어떤 방향으로 해결해야 할 것인가를 설명한다. 사례집이나 현장과 밀착된 연구서라기보다는, 뭐랄까, 비정규직 개념과 정의를 중심으로 원리원칙을 다지고 드는 학술서같은 느낌. 프롤로그는 인력관리 아웃소싱회사에서 일했던 사람의 인터뷰다. 도급계약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도급 금액, 기간, 인원, 결원율 한계죠. 이를테면 몇 억으로 도급 금액을 줄 테니 이 사업장에..

딸기네 책방 2017.09.25

베른트 하인리히, 홀로 숲으로 가다

나는 열 살 때까지 북부 독일의 숲으로 피난을 가서 6년 동안 살았다. 우리 가족이 가진 것은 아주 적었지만 나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까마귀를 애완용으로 키웠고 딱정벌레를 수집할 수도 있었다.상쾌하고 맑고 영원한 마법에 싸인 세상. 이제는 그저 이따금씩 떠오르는 그 생생함을 다시 맛볼 수 있을까? 난 이미 그런 조건들을 많이 갖추고 있긴 하다. 우리 가족이 미국으로 이주해온 이후 나는 메인 주의 시골에서 십대를 보내면서 사냥을 하고, 낚시를 하고, 덫을 놓는 법을 배웠다. 메인에서 만난 스승들은 이미 오래전에 내게 집에서 맥주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라이플총을 가지고 있고 통나무 오두막은 벌써 지어놓은 상태다. 나머지는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그래서 한번 해보기로 했다. (7쪽) 얼마전..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페이스북에 지인이 올린 글. "상암동 난지공원 북쪽에 요런 게 몰래 지어져 숨어있다. 동네 주민인 우리 회사 직원의 말에 의하면 일반 도서는 거의 없어 주민들을 외면한 도서관이라는데." 어떤 곳인가, 그냥 심심해서 검색해봄. 웹사이트의 이사장 인사말은 이렇게 돼 있다. "2017년은 근대화의 국부(國父)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돌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해입니다. 우리가 박정희 대통령을 기리는 이유는 박 대통령이야말로 애국애족(愛國愛族)의 정신으로 일평생을 조국 근대화와 굳건한 안보 구축을 위해 헌신하신 분이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정의의 율법과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을 통해 이 나라 국민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강철 같은 의지의 국민으로 환골탈태시킨 분이기 때문입니다. 박정희대..

오랜만에 리움

지난 금요일, 오랜만에 리움.달항아리는 언제나 그렇듯 좋았고. 그래도 역시 자기는 청자~~~고려청자는 비싸겠지... -_-;;청자에다가 철화를 넣는 이유를 모르겠다.힘들게 청자 만들어서 왜? 왜? 김홍도의 병진년 화첩... 감각이 현대적이면서 따뜻해서 좋다.이번에 최고 좋았던 건 김환기. 역시 김환기...사정이 사정인지라 김환기 특별전 하려다가 취소했다는데 아쉽다. 로비에 있는 나와 코헤이의 사슴은...얼핏 보면 특이하니 이쁜데, 저 안에 시체;;가 있다고 생각하면 섬뜩.데미안 허스트의 나비 작품들도 그렇고.... 아니쉬 카푸어의 ....요런 것도 좋아하지 말입니다. 데미안 허스트의 약 아파트;;(원제는 찾아보니 '죽음의 춤')을 예전에 보았을 때 참 좋았는데 그건 없고 약장(원제는 '두려워할 것 없다'..

호세 무히카 조용한 혁명

한 권을 다 읽고 새 책을 펴는 것이 아니라 이 책 저 책 펼쳐놓고 읽다가 덮었다가 하다 보니, 한 권 다 끝내는 데에 몇 달씩 걸리기 일쑤다. 그렇게 읽다가 잊어버린 책들이 책꽂이, 책상 위, 서랍 속에서 발견되는 일도 종종 있다. 앞부분 읽은 내용도 다 잊어버려서 다시 들춰봐야 하는 것들. 그렇게 '발굴'한 것들 중에서 두 권, 토요일에 카페에 앉아 드디어 끝장을 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마우리시오 라부페티, 박채연 옮김, 부키)이었다. 재미있었다. 이 책을 쓴 저널리스트 라부레티는 "예전에는 우루과이에서 왔다고 하면 바로 ‘축구'가 나왔지만 지금은 많은 지역에서 ‘무히카'를 말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17쪽)고 썼다. 그 말 그대로다. 내게 우루과이는 '우루과이 라운드' 혹은 '제1회 월드..

딸기네 책방 2017.09.14

[공영방송 제자리 찾기](3)전문가형 BBC, 시민형 ZDF···제도는 제각각, 언론자유는 ‘운영’이 좌우

2012년 아시아·태평양 방송연맹(ABU)은 ‘공영방송’에 대해 ‘민영도, 국영도 아니며 정치적·재정적으로 독립된 방송’이라고 규정했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시민의, 시민에 의해,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 공적 제도’로서 공영방송은 사회적 책무를 갖는다고 언론학자들은 말한다. 나라마다 공영방송 소유구조나 정부와의 관계는 조금씩 다르다. 공영방송들은 독립성을 강조한 ‘전문가모델’, 의회 다수당이나 정부에 의해 직접적으로 통제되는 ‘정부모델’, 의석 비율에 따라 정당들이 영향력을 갖는 ‘의회모델’, 의회 정당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집단들도 발언권을 갖는 ‘시민모델’ 등으로 나뉜다. 여러 모델들은 그 나라의 방송 역사와 시장 구조, 정부 방침 등에 따라 서로 다르게 발전해왔다. 방송 독립성 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