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4012

[구정은의 '현실지구'] USB로 애플 때린 유럽

유럽의회가 4일(현지시각) 스마트폰을 비롯한 전자기기 충전 포트와 커넥터를 USB-C 타입으로 통일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2024년부터 애플 제품에만 쓰이던 독자적인 충전장치는 유럽에서 팔지 못하게 됐다. 애플은 2년 안에 제품 디자인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랩톱은 2026년까지 충전 포트를 통일하면 된다고 유예기간을 좀 더 줬지만 결국 2024년 시한에 맞춰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다른 형태의 충전장치가 ‘불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전 모델을 다 폐기해버리면 환경적으로도 나쁘다. 그래서 다른 장치들의 ‘단계적 퇴출’을 유도하기로 했다. 어쨌든 디지털 기기마다 충전장치가 달라서 C타입, B타입, 애플 타입 전선줄을 줄줄이 늘어놓고 살아야 했던 소비자들에겐 반가운 소리다. 유럽에서 ‘강제 통일’이 시..

[구정은의 세계, 이곳] 우크라이나의 핵 중심 자포리자

자포리자 Zaporizhzhia. 우크라이나 남동부 자포리자 주의 중심도시다. 드니프로 Dnipro(Dnieper) River 강변에 자리잡은 이 도시에는 올 초까지만 해도 71만명이 살고 있었다. 러시아에서 발원해 우크라이나를 거쳐 흑해로 흐르는 2200km 길이의 강이 자포리자를 두 구역으로 나눈다. 강 가운데에는 호르티차 섬이 있다. 자포리자 사람들은 섬을 기점으로 넓은쪽 강물을 ‘옛 드니프로’, 좁은 쪽을 ‘새 드니프로’라 부른다. 자포리자는 ‘느려지는 곳’이라는 뜻으로, 드니프로 강의 물살이 느려지는 지점에 있다 해서 나온 이름이라 한다. 자포리자의 사진들을 찾아보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호르티차 섬과 오래 전 이 일대에 살았던 ‘자포리자 코사크’ 부족의 문화를 간직한 옛 성채의 아름다운 풍광이 ..

[구정은의 '수상한 GPS'] 누가 파키스탄에 홍수를 일으켰나

파키스탄에서 큰 홍수가 났다. 6월부터 계속된 물난리로 지금까지 1200명 가량 숨졌는데 그 중 400명 가까이가 아이들이다. 피해를 입은 사람은 3300만명, 2억 4000만 인구 가운데 15%가까이가 영향을 받았다. 가라앉거나 부서진 집이 100만 채가 넘고, 30만명 이상이 지금 천막에서 이재민 생활을 하고 있다. 가축도 100만 마리 이상 죽었다고 한다. 경제적 손실은 100억달러, 약 13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셰바즈 샤리프 총리는 “파키스탄 역사상 최악의 홍수”라면서 8월 25일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파키스탄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몬순으로 1961년 기록이 시작된 이래 가장 많은 비가 쏟아졌다. 아라비아해와 면한 신드 주와 발루치스탄 주의 피해가 특히 컸는..

[구정은의 '수상한 GPS'] 쁘라윳 직무정지... 태국 '암흑의 8년' 끝날까

태국 헌법재판소가 24일 쁘라윳 짠오차 총리의 직무 정지를 결정했다. 쁘라윳 총리는 육군참모총장이던 2014년 잉락 친나왓 당시 총리가 반대 세력에 밀려나게 되자 그 틈을 타 쿠데타를 일으켰다. 계엄령을 선포한 뒤 권력을 잡아 총리직에 올랐고, 2019년 총선으로 집권을 연장했다. 그 이태 전인 2017년 군부 쿠데타 정권은 개헌을 했는데 그 헌법에 따르면 총리의 임기는 아무리 길어도 8년을 넘길 수 없다. 야권에서는 2014년 총리가 된 뒤부터 계산하면 올해 8월 24일로 임기가 끝나는 거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여권은 개정된 헌법에 따라 2019년 3월 총선을 거쳐 6월에 총리가 됐으니, 그 때부터 계산해 2027년까지 총리직을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야권은 총리의 임기가 언제 끝나는지 결정을 ..

[바람과 물] 크루즈와 비행기, 코로나 시대의 여행

오랜만의 여행길. 2년여 만의 외국 방문이다. 인천국제공항에 아직은 항공편도 여행자들도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비행기 티켓값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중동과 북아프리카처럼 식량을 수입하는 지역에서는 ‘빵값 폭동’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 와중에도 나는 여행을 떠났다. 2년 동안 발이 묶여 있었던 터였기에, 오랜 베프와의 여행을 앞두고 마치 비행기 처음 타는 사람처럼 한껏 꿈에 부풀었다. 무얼 볼까 어디서 묵을까 의논하느라 톡방은 연일 부산스러웠다. 마침내 시작된 여행. 늘 그렇듯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은 즐겁다. 세계가 이렇게 닫혀 있었던 적이 있었을까. 전염병이 갑자기 세상을 휩쓸었고, 수많은 나라들이 방역 봉쇄로 사람들의 이동을 ..

[구정은의 '현실지구'] 레바논은 왜 우크라이나 옥수수를 거부했을까

배 한 척이 터키 남쪽에 멈춰섰다.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 선적을 둔 ‘라조니’라는 화물선이다. 배에 실린 것은 옥수수, 힘겨운 국제협상 끝에 우크라이나에서 나온 곡물이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바다에 떠있다. 러시아의 봉쇄로 우크라이나에 묶여 있던 곡물들이 이달 들어 항구를 떠나기 시작했다. 옥수수를 실은 배 두 척은 터키로 향했다. 아일랜드, 영국, 이탈리아, 중국으로 향한 선박도 있다. 8월 1일 첫 출항 이후 40만톤 가까운 곡물이 배에 실려나갔다. 우크라이나 항구들이 러시아군에 봉쇄당한지 다섯 달이 넘어가면서 식량 불안이 커졌다. 유엔은 이 봉쇄를 풀고 세계의 밥상 걱정을 덜기 위해 러시아와 협상을 했다. 터키가 중재한 협정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초르노모르스크 등 3개 항구를 거점으로 곡물 수출을 ..

[구정은의 '수상한 GPS'] 미국, 이란,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남미를 흔드는 비행기 한 대

보잉747-300 화물기 한 대가 지난 5월 멕시코에서 자동차 부품을 싣고 출발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파라과이의 국경도시에 잠시 들렀다. 그러다가 악천후를 만났고, 원래 기착할 곳은 아니었지만 급유를 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6월 6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에세이사 공항에 착륙했다. 그 뒤로 화물기는 계속 그곳에 묶여 있다. 2달 가까이 지난 8월 3일, 미 법무부는 아르헨티나에 이 비행기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고 발표했다. 미국,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이란, 이스라엘, 파라과이… 온통 비행기 한 대 때문에 신경전을 벌이게 된 복잡한 사건이다. AP통신 등 외신들도 ‘참 기묘한 사건’ ‘미스테리 항공기’라고들 전한다. 문제의 항공기는 원래 이란 항공사가 가지고 있었는데 베네수엘라에 팔았다..

[구정은의 '수상한 GPS'] 사우디에 간 바이든, 이란에 간 푸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중동 방문에 이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튀르키예와 이란을 찾아감. 중동에서 미-러 힘겨루기와 편가르기가 격화되고 있다. 푸틴이 화욜(19일)부터 이란 방문. 이날 테헤란 메흐라바드 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과 회담하고 이어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를 만남.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터키) 대통령도 만나 양국간 현안을 논의했으며, 두 정상과 3자 정상회담도 했다. [프레스TV] Leader tells Putin: NATO knows no boundaries, had to be stopped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밖으로 나간 게 이번이 두 번째. 6월 말 타지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을 방문. 모두 과거 옛 소련의..

[구정은의 '현실지구'] 보스니아와 우크라이나, 학살과 사과

옛 유고슬라비아연방에서 민족갈등이 터져나와 극렬한 내전이 벌어지고 있던 1995년 7월, 보스니아의 스레브레니차라는 곳에서 세르비아군이 주민들을 끌고 가 학살한 뒤 구덩이에 한데 묻었다. 희생자가 8000명이 넘었고, 모두 무슬림 보스니아 남성들이었다. 유엔이 파견한 네덜란드 평화유지군이 주변에 있었지만 그들은 세르비아군을 막지 않았다. 27년이 흐른 뒤인 지난 11일, 보스니아를 방문한 카샤 올롱그렌 네덜란드 국방장관은 당시 학살을 방치한 자국 군의 행위에 대해 사과를 했다. 추모식에 참석한 장관은 "끔찍한 대량학살의 책임은 세르비아 군대에 있지만 국제사회가 주민들을 적절히 보호하지 못한 것 또한 확실하다"면서 "네덜란드 정부는 당시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발칸 ‘제노사이드(..

[구정은의 '현실지구'] 아프리카, 난민, 르완다.

르완다 남서부에 위치한 니융궤 열대우림. 서쪽으로는 키부 호수와 콩고민주공화국, 남쪽으로는 부룬디 국경과 접한다. 아프리카 대륙 복판에서 가장 잘 보존된 열대우림 중 하나다. 2004년부터 이 일대 1000여㎢ 숲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침팬지와 원숭이 등 12종의 영장류를 비롯해 숱한 동물들이 살아가는 숲을 가로지르는 능선은 나일강과 콩고강 사이의 분수령을 형성한다. 키부 호수를 따라 북쪽으로 옮겨가면 비룽가, 멸종위기종인 고릴라들이 사는 곳이다. 아프리카 하면 흔히 떠올리는 밀림이 바로 이런 곳들이다. 유럽에도 ‘정글’이 있다. 영국과 마주보는 프랑스 도시 칼레. 영국으로 건너가려는 이주민, 난민들이 이곳에 모여든다. 칼레의 밀림이 형성된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해협 아래 터널을 이용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