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4012

[구정은의 '수상한 GPS'] 돌아온 룰라, 그때와 지금의 브라질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1일 취임했다. 2000년대 2번 연임, 이번이 3번째 집권이다. 지난해 10월 노동자당(PT) 후보로 다시 대선에 나와 자이르 보우소나루 당시 대통령에게 승리했고 보우소나루는 지난해 말 미국으로 떠나서 새 대통령 취임식에도 안 왔다고 한다. 1945년생이고 상파울루 노동자 출신이다. 1970년대 말 브라질 군사독재 기간에 노조 운동을 이끈 지도자였으며 1980년 군사독재정권이 끝난 뒤 노동자당 창당 주역이 됐다. 1986년 상파울루에서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진출했다. 1989년, 1994년, 1998년 대선에 출마했지만 모두 낙선. 그래도 1990년대 브라질 대통령은 종속이론가인 좌파 지식인 엥히케 카르도주였고, 그 시절에 노동자당은 브라질 정치..

[구정은의 '현실지구']석유에서 햇빛으로, 걸프의 변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시작한 2022년,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을 보며 한 해를 보낸다. 전쟁 속에서 세계는 안녕했을까. 남의 나라 전쟁보다는 코로나 터널이 끝나가는 것에 한 숨 돌리며 안심한 이들이 더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비애에 시민들은 공감과 연대를 보냈으나 국가들 간에는 이 전쟁을 놓고 힘겨루기 혹은 편가르기가 벌어졌다. 그래도 에너지 대란이나 식량대란은 오지 않았다. 유럽은 난방비가 올라가 추운 겨울을 맞았다지만 화석연료로 돌아가는 대신에 ‘탈탄소, 탈러시아’로 더 빨리 더 굳세게 가려는 듯하다. 에너지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것은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국 정부의 핵심 관심사가 되고 지정학적 변수가 된다. 이를테면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밀착 같은 것..

[구정은의 '세계, 이곳'] 탕헤르와 '아틀라스의 사자들'

모로코 북쪽, 항구도시 탕헤르. 초록빛 지붕에 흰 벽을 이은 지중해식 집들, 유럽풍 건물과 모스크가 공존하는 곳.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에서 창문을 열고 몸을 밖으로 내민 젊은이들이 붉은 국기를 흔들며 함성을 지른다. 유튜브와 틱톡에 올라온 모습이다. 프랑스와의 대결은 패배로 끝났지만 카타르 월드컵에서 돌풍을 일으킨 모로코는 축제 분위기다. 모로칸월드뉴스, 'Morocco’s Honorable World Cup Journey Ends Despite Brilliant Performance Against France' 스페인식으로는 탕헤르, 프랑스어로는 탄지에르, 토착민 베르베르족과 아랍의 언어로는 탄자. 복잡한 역사가 복잡한 이름에 새겨져 있는 도시다.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스페인 남단 알헤시라스와 ..

[구정은의 '현실지구'] ‘우주에서 보이는 산호초’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얀 계곡. 1세기부터 13세기까지 박트리아라는 고대 왕국이 있었던 이곳에는 간다라 불교미술의 찬란함을 보여주는 유적과 성소들이 있었다. 2001년 3월 이슬람 극단주의에 경도된 탈레반 정권은 거대한 불상들을 파괴했다. 인류 전체의 비극이었다. 2003년 유네스코는 세계문화유산인 바미얀 유적지를 ‘위험에 놓인 유산’ 목록에 올렸다. 이라크의 사마라. 바그다드 북쪽 130km에 위치한 작은 도시이지만 한때는 거대한 압바스 제국의 수도였다. 아름다운 사원과 ‘바벨탑’ 이미지의 원형이 된 거대한 미나레트(이슬람 사원의 탑)가 있는데 미군과 수니파 반군의 충돌 와중에 역시 파괴를 겪었다. 유네스코는 사마라도 2007년 ‘위험 유산’에 집어넣었다. 시리아의 팔미라. 고대 셈족의 사원터에 기원 전후..

[인권연대] 국가의 잘못, 국가의 역할

택시를 타고 서울 이태원을 지나가는데 극우 시위대가 집회를 하고 있다. 기사 아저씨가 물으신다. “그래서, 누가 잘못한 거예요?” 참사의 원인은 무엇이며 누가 잘못한 것일까. 핼러윈이라고 놀러왔던 사람들? 현장에 배치되지 않은 경찰? 하필이면 빨간색으로 구청장의 소속이 바뀌어 늘 하던 축제 대비도 제대로 못한 용산구?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느닷없이 ‘용와대’로 옮겨가 안전을 놓치게 만든 대통령? 스스로 ‘진보’라고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조차 ‘미제 귀신’ 씌운 사람들을 탓하는 걸 봤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놀러왔던 사람들은 잘못이 없다. 아무도 그런 사고가 일어날 거라고, 이태원 골목에서 150여명이 목숨을 잃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테니까. 공교롭게도 사고가 난 그 길은 나도 종종 지나치는 곳이고..

[구정은의 '세계, 이곳'] 샤름엘셰이크의 기후회의, "이집트가 돌아왔다"

브라질에서 최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재집권하며 남미 좌파 정치의 부활을 알렸다. 극우파 정권 밑에서 세계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던 브라질이 다시 변화의 바람을 탄 것이다. '룰라의 귀환'을 국제사회에 실감시켜준 장면이 있었다. 이집트 시나이반도 휴양지 샤름엘셰이크에 그가 16일 나타나자 열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세계 언론에 잡혔다. 유엔 기후변화협약 27차 당사국총회(COP27) 참석차 방문한 이곳에서 룰라는 전 정권 시절 파괴된 아마존 열대우림을 복원하고 '기후 범죄자'들을 쫓아내겠다고 약속했다. 룰라의 재기를 보여준 샤름엘셰이크. 이전 같았으면 기후대응 논의와는 거리가 멀었던 곳이다. 홍해 연안에 위치한 인구 7만3000명의 작은 도시로 이집트인들은 흔히 ‘샤름’이라 줄여 ..

[구정은의 '현실지구'] "그래도 중국" 베이징에 간 베트남 총비서와 독일 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이 확정됐다. 예상됐던 일이지만 경제가 커진 것과 거꾸로 가는 중국의 과거회귀는 놀라울 정도다. 민주화의 전망이 사라져가는 중국을 국제사회가 우려의 눈길로 바라보는 가운데 두 나라 정상이 베이징의 문을 두드렸다. 한 사람은 몇 안 남은 사회주의 국가 중 하나이면서 중국식 개혁개방 모델을 따라온 베트남의 실권자이고, 또 한 사람은 독일 총리다. 오랜 악연을 뒤로 하고 최고의 환대를 받은 베트남 정상의 모습과 독일 총리의 중국 방문을 둘러싼 유럽의 논란은 ‘시진핑의 중국’을 마주한 세계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지난달 30일 응우옌 푸쫑 베트남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비서가 베이징에 도착하자 중국은 21발의 예포로 환영했다. 양국 정상이 마스크 없이 베이징 인민대회당 환영식에서 만나 악..

[구정은의 '수상한 GPS'] 리시 수낙과 영국의 인도인들

영국 정치는 참 시끄럽기도 하다. 석달 새 세번째 총리라니. 보리스 존슨이 사퇴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 새 리즈 트러스를 거쳐 새 총리가 취임했다. 25일 총리가 된 리시 수낙. 당초 '포스트 존슨'으로 유력시됐던 사람이다. 보수당 의원 100명이 그를 지지했었다. 하지만 평당원들의 반란으로 극우파 트러스에게 패했는데 트러스가 44일만에 사퇴해버렸고 수낙이 결국 다우닝가 10번지의 주인이 됐다. 첫 유색인종 총리, 42세 최연소 총리다. 수낙은 승리를 결정지은 뒤 "영광스럽다" "내가 큰 빚을 지고 있는 이 나라를 위해 일하게 될 것은 내 인생의 가장 큰 특전"이라고 했다. 수낙은 2015년 하원의원이 됐고 테리사 메이 정부에서 2019년 첫 입각했다. 2020년 존슨 정부에서 총리에 이은 2인자..

[구정은의 '세계, 이곳'] 마다가스카르 외교장관은 왜 쫓겨났을까

인도양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에서 외교장관이 해임됐다. 현지언론 마다가스카르트리뷴은 18일 리샤르 란드리아만드라토 외교장관의 모든 일정이 취소되더니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전격 해임됐으며 국방장관이 당분관 외교부 일도 맡아 한다고 보도했다. 이 나라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다. 2019년 안드리 라조엘리나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로 외교장관이 4번 바뀌었다. 해임된 란드리아만드라토는 경제재정부 장관을 지낸 사람인데 그 때도 구설에 올라 물러났다. 지난 3월 내각에 복귀했을 때에도 말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 해임은 늘 있어온 정치 다툼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유엔 총회에서 대통령과 총리의 승인 없이 러시아를 규탄하는 결의안에 찬성했다가 물러난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유엔 총회에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4개..

[바람과 물] “물을 팝니다” 말라 붙은 강, 상품이 된 물

2022년 여름 파키스탄에서 큰 물난리가 났다. 6월부터 시작된 홍수가 8월에는 국토의 3분의 1을 물에 잠기게 만들었다. 9월 중순까지 홍수로 15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 중 550여명이 아이들이었다. 피해를 입은 사람은 3300만명, 2억 4000만 인구 가운데 15%가까이가 영향을 받았다. 가라앉거나 부서진 집이 100만 채가 넘었다. 물적 피해는 400억 달러에 이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640만명이 원조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셰바즈 샤리프 총리는 “파키스탄 역사상 최악의 홍수”라면서 8월 25일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이 위치한 남아시아는 원래 열대성 강우인 몬순이 여름마다 찾아오는 지역이다. 그런데 계속 기후변화로 상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