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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포페스쿠 '국가 경계 질서'

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게, 경계의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경계 경관 하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어떤 물리적 분리의 표식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내 시야가 닿는 곳에는 그 어떤 국경 펜스나 감시탑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결국 강을 건너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소련도 공산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그곳으로 넘어갈 이유가 없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강을 건너지 못했던 이유가 그것이 경계라는 것을 알고, 넘어가면 앞으로 삶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이어질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하천 중간에는 어떤 장벽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경계가 나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6-7쪽) 8월에 읽은 책인데 책상 위에 쌓아두고 있다가 이제서야 정리한다. 가브리엘 포페스쿠의 (이영민 외 옮김..

딸기네 책방 2018.09.28

[경남 함양]솔송주와 정씨고가, 종갓집 외손녀의 고퀄 북카페

일두고택을 나오면 이런 돌담길. 정면에 보이는 담을 따라 걸으면 대문 안으로 이쁜 마당이 보이는 집이 있다. 너무 예뻐서 그냥 막 들어갔다. 문 열려 있으니 들어가도 되겠거니 하면서. 들어가는 순간 바로 옆 건물 마루 밑으로 뱀 한 마리가 쏜살같이 스르르~사진을 찍으려는 내 동작에 비해 너무 빨라서 못 찍었다. 간판에서 보이듯, 전통주인 '솔송주'를 파는 곳이다.문재인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모두모두 다녀갔다고. 사진도 있다. 뽀리는 술을 샀다. 다음날 가서 또 샀다. 뽀리네 집들이 할 때 마시기로 했다. 마을 구경을 하면서 그 다음에 들른 집은 정씨고가. 1박 2일 한옥마을 한 번 다녀와서 뭘 이렇게 자꾸 올리냐고?왜냐면... 난 한옥마을 처음이니까. 히히. 다른 포스팅도 더 남아 있음. 실은 이 동..

[경남 함양] 개평 한옥마을에서 보낸 하루

추석 연휴 첫날, 모처럼의 나들이. 오래도록 어울리며 지내왔지만 여행은 처음 가는 멤버들. 애리언니와 뽀리와 나. 현미도 왔으면 '완전체'였겠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집으로... 날씨는 정말 좋았다.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토요일 오전 8시 20분 버스를 타고 함양으로. 대학 동기인 지인의 외가에서 을 찍었다는 얘기를 듣고, 사진을 한번 보고, 그 드라마 한번도 본 적 없는 처지에 충동적으로(!) 버스표 끊고 '고택스테이' 예약한 뒤 두근두근 기다렸던 여행이었다. 함양 버스터미널 내려서 옛날식 짜장면으로 점심 때우고, 택시 타고 개평한옥마을로. 택시요금 1만원. 마침 기사 아저씨 집도 개평마을이라고. 내리면서 아저씨 명함 받아놓고, 담날 터미널 나갈 때 또 이용함. 진짜진짜 너무나 좋았던 곳. 돌담길 따라 들어..

여름의 기억.

그렇게도 더웠던 여름.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더웠다는 2018년의 여름.어느새 그 여름의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지면서, 가을. 더운 여름날의 사진 한 장. 7월 4일 아침 출근길 풍경.기온은 높았지만 너무 맑고 화창해서 오히려 기묘했던 하늘. 또 한 컷, '고흐의 그림 같다'며 좋아했던 여름 하늘. 여름 내내 열일 했던 북태평양고기압. 여름이 무르익기 전, 서울역 앞으로 걸어가면서.확인해보니 6월 30일. 눈에 띄진 않지만 잘 들여다보면 이쁜 꽃. 가을 초입, 여전히 맑았던 하늘.어느 저녁 회사 앞을 지나가는데 구름이 높게 깔렸다.하늘이 두쪽이라도 난 듯 파랗고 흰 빛이 갈라져 있던. 9월 1일의 오후, 학원 수업을 마친 딸과 함께 동작대교를 걸어서 건넜다. 강 남쪽 편 둔치의 풀밭이 이뻤다. 저 ..

서벌, 다리가 긴 멋진 고양이

퓨마가 탈출했다가 사살되고 동물원 폐지론에 힘이 실리고 있는 와중에... 퓨마에 대해 찾다가 발견한 멋진 고양이. 빅캣(사자 호랑이 퓨마 치타 재규어 등등) 정도는 아니고 중급 정도 되는 고양이과 동물이다. 이름은 서벌(Serval). 위키피디아에 나온 사진들을 보니 이 녀석 아주 매력적이다. 애기 땐 영락없는 고양이. 하지만 자라면 고양이랑 비슷한데 몸통은 작은 치타같다. 팔다리(?)가 아주 길다. 요렇게 흰 놈도 있다는데... 야생상태에서 흰 서벌이 발견된 적은 없다고. 알비노인 듯. 서벌의 뒷모습. 보호색이다! 귀 뒷모습 아주 특이함. 고향은 아프리카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많이 산다. 북아프리카나 사헬에는 거의 없다는 것으로 보아 건조한 곳에서 살지는 않는데, 열대우림에도 안 산다고 하니.....

캐런 메싱 '보이지 않는 고통'

우리가 구성했던 최초의 협력체는 인간공학자, 사회학자, 법학자, 그리고 여섯 곳의 노동조합 대표로 구성됐다. 우리는 그 협력체를 '보이지 않는 상처'라고 불렀다. 여성이 일터에서 겪게 되는 직업보건상의 위험성이 남성이 일터에서 겪는 것에 비해 덜 중요하게 여겨지거나, 더 모호하게 파악된다는 사실과 연관지어 붙인 별칭이었다. 나는 사업주와 과학자, 행정가들이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고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상태로 여러 노동조건과 노동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지켜봤다. 나는 과학 기득권층의 제약에서 벗어나 노동자의 고통에 대한 회의적 태도가 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직업보건 연구의 학문 영역을 어떤 식으로 형성하는지 지켜보았다.우리가 이렇게 양질의 협력관계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었던 토..

딸기네 책방 2018.09.16

[구정은의 세상] 난민이 싫으면 석유를 끊어라

예멘인들의 엑소더스가 시작된 건 2015년 초의 일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공습을 시작한 뒤 인구 2800만명 중 2200만명이 외부 도움에 끼니를 의존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고, 19만명이 나라를 떠나 밖으로 나갔다. 사실 그전까지 예멘은 난민을 내보내는 나라가 아니라 밖에서 온 난민을 끌어안고 사는 나라였다. 소말리아에서 도망쳐 예멘으로 간 사람이 28만명이니, 지금도 예멘에서 나온 난민보다 예멘이 받아들인 난민 숫자가 훨씬 더 많은 셈이다. ‘예멘 난민 사태’는 사우디가 일으킨 일이다. 2011년 ‘예멘판 아랍의 봄’으로 장기집권 독재자를 몰아낸 뒤 집권한 압두라부 하디라는 인물이 당초 정치세력들 간 권력을 나눠갖기로 한 약속을 어겼다가 자기 정당에서까지 축출되고 결국 쫓겨날 판이 됐는데, 사우디가 하..

[기협 칼럼]가난은 날씨가 되어 온다

태풍이 지나가고 비가 오니 무더위가 그래도 좀 수그러들었다. ‘기상 관측 이래 최고기온’을 경신하던 8월 초의 그날, 스포츠 중계하듯 기상청의 공식 측정치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던 여름. 서울역 근처 쪽방촌을 취재하고 온 기자의 기사엔 찜통 더위 속에 방안에 누워 선풍기 한 대 틀어 놓고 하루를 보내는 어떤 이의 코멘트가 들어 있었다. “그래야 하루가 가니까 억지로 잠을 청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거죠.” 잠을 자야만 시간이 가니까 잔다는 그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그 더운날 오체투지를 하던 쌍용자동차 사람들, 그 옆에서 태극기를 들고 ‘박정희 대통령 말씀’을 외치던 사람들, 이 여름 한국의 풍경이었다. 태풍이 온다고 며칠 전부터 예보가 흘러나오고, 더위를 식혀줄까 가뭄을 해갈해줄까 은..

사스키아 사센, '세계경제와 도시'

세계경제와 도시 Cities in a World Economy사스키아 사센, 남기범 등 4명 옮김. 푸른길 내용이 좋은데 번역이 정말 나빠서 읽으면서 화가 많이 났던 책. 여러 사람이 번역했는데, 특정 챕터들이 특히 엉망이었다. 내용은 재미있다. 눈길을 끄는 건,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사스키아 사센이라는 사람. 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고 두 권을 찾아 읽었다. 는 비교적 최근 것이고, '사스키아 사센의 세계경제와 도시'라며 저자 이름을 타이틀에까지 집어넣어 번역돼 나온 이 책은 2012년 것이다. 사센에게 명성을 안겨 준 도시 책(The Global City)은 못 읽고 이 책을 골랐는데 명성이 괜한 게 아니지 싶다. 재미난 것은 사센이라는 사람.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1947년 태어났는데, 부모가 이듬해 ..

딸기네 책방 2018.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