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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야자

Chamaedorea elegans. 흔히 '테이블야자'라고 부르는 녀석들이다. 영어로는 parlour palm, '거실야자'라고 한다니 비슷하긴 하다. 집에서 이 녀석들을 키우기 시작한 것은 2013년 무렵. 회사 곳곳 화분의 테이블야자들이 죽어가는 걸 보고 뽑아다가 집에서 키우기 시작했고, 동네 꽃집(이 아니고 식물노점상)에서 몇 개 더 들여왔다. 연녹색 이쁜 것들이 잘 자라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포기가 굵어지면 여러 화분에 나눠 심었는데 다 죽어나가고 지금 집에 있는 화분은 2개다. 그런데 초록초록 이쁘고 여리던 것들이 어째 점점 굵어진다? 색깔도 짙어지고... 뭐랄까, 애완용에서 야생의 느낌으로 살짝 향해가는 그런 기분. 내가 너무 막 키워서 그런가? 이건 테이블용이 아닌데... 그래서 찾아보니..

앤서니 스미스, '민족의 인종적 기원'

오랜만에 제대로 공부되는 책을 읽었다. 앤서니 D. 스미스, (이재석 옮김. 그린비). 재미있고 현란하고 풍부하다. 다 읽고 나니 어질어질. 복잡하고 엄밀한 내용을 학술적으로 꼼꼼히 짚어가면서, 일관된 구조로 짜맞춰가면서, 지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방대한 양의 사례와 정보를 퍼부어가며 적어놨으니 그럴 수밖에. 번역이 껄끄럽다 싶은 부분이 적지 않지만 원문이 아무래도 그렇지 싶다. 글쟁이의 책이라기보다는 학자의 글이고, 꼬이거나 모호한 문장을 얼추 넘겨가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 이만한 넓이와 깊이의 책을 읽는 데에 그 정도 수고는 감내할 수 있다. 생각보다는 다 읽는 데에 시간이 덜 걸렸다. 일주일. 이 정도면 쾌속 돌파한 셈이다. 책이 처음 나온 시기는 1986년. 베네딕트 앤더슨의 와 에릭 홉스봄, 테..

딸기네 책방 2018.06.17

[구정은의 세상] 김정은과 샤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손을 맞잡았다. 앞날이 어떻게 흘러갈 지는 알 수 없지만 트럼프는 '에어포스원'을 타고 미국으로 떠났고, 김 위원장도 한밤중 창이공항을 거쳐 북한으로 돌아갔다. 김정은은 싱가포르의 세인트레지스 호텔에 묵었다. 프레지덴셜 스위트룸. 굉장히 비싼 방일 것은 분명하다. 세상 일은 참 재미있다. 싱가포르의 세인트레지스 호텔. 원래 이 호텔은 존 제이콥 아스토르4세(John Jacob Jack Astor IV)라는 미국 기업가가 창업한 호텔 체인의 하나였다. 하지만 이 호텔은 뒤에 스타우드로 들어갔고. 스타우드는 2016년 매리어트에 인수됐다. 당시 중국 안방(安邦)보험이 스타우드를 사들이느냐 마느냐를 놓고 말들이 많았다. 세계에서 전방위로 인수합병전을 펼치던..

시리아와 북한, 오바마와 트럼프

국제관계에서 솔직함 혹은 정직함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상과 현실은 어떤 기능을 할까? '기능'이라고 하니 너무 추상적이다. 좀 더 쉽게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나쁜 나라, 나쁜 지도자를 나쁘다고 손가락질하고 때려주는 게 좋을까, 일단 싸움은 막고 사람들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게 좋을까. 이렇게 물으니 또 너무 단순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굉장히 복잡한데. 버락 오바마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이었고, 솔직하지 못했고, 무능했다. 최소한 시리아 문제에서라면. 바샤르 알아사드라는 독재자를 몰아낼 뜻이 없으면서 나쁘다고 지탄했고, 쫓겨나야 한다고 얘기했다. '(미국이) 쫓아내야 한다' '쫓아내겠다'라고는 하지 않았다. 이란이 물밑에서 협상을 해주고, 그래서 러시아가 아사드의 안전보장을 해주면서 시리아가..

[구정은의 세상] 밥값과 평화

대학시절의 어느 겨울, 한 달 동안 ‘알바’를 했던 회사가 있었다. 종일 서서 일하느라 힘들었지만 기억에 남아 있기로는 좋은 회사였다. 4대보험에 가입시켜줬고, 점심을 먹고 난 오후에는 야쿠르트와 초코파이를 줬다. 가끔씩 그 회사를 떠올릴 때면 생각나는 것은 두 가지다. 눈이 많이 내린 날 출근하기 너무나 싫어 회사를 그만둘까 했던 기억, 그리고 국. 밥과 함께 나오는 그 국 말이다. 끼니 때마다 국물을 싹싹 퍼먹는 내게, 1cm 깊이로 퍼주는 국은 언제나 모자랐다. 낯선 분위기에서 쭈뼛거리느라고 밥 퍼주는 분에게 ‘국 더 달라’는 말도 못한 채 한 달 동안 점심을 먹었다. 기숙사는 공짜였다. 앉은뱅이 탁자 하나에 텔레비전을 놓아둔 동료 방에 놀러가기도 했다. 지방에서 온 친구들은 대개들 지하철 요금을 ..

산책인 줄 알았는데 등산이 된 성곽길 걷기

금요일에 북한산 성곽길을 걸었다. 한성대입구 역에 내려서 혜화문 지나 골목길을 걸어가는데 조용하고 깨끗한 동네 분위기가 좋았다.한 10분 걸으니 성북동 왕돈까스집과 마전터 있는 곳 나옴.거기서 와룡공원 쪽으로 올라감. 가는 길에 풀꽃도 보고. 성곽 따라 본격적으로 올라가기 시작. 애기똥풀이랑 못 먹는 딸기같이 생긴 것도 봤음. 산등성이에 산책로로 잠시 빠져들었다가 다시 성곽길로. 가는 길에 내내 사진을 찍었으면 좋았겠지만 못 찍었음. 말바위 안내소 근처에 전망대가 있는데 시원하고 좋았음.거기서 숙정문까지 가는데 좀 힘들어지기 시작.언제 생전 성곽길같은 걸 걸어봤어야 말이지. 사실은 휴무인 날은 늘 그렇듯 이날도 늦도록 딩굴딩굴하다가 남편이 성곽길 간다고 해서 급히 따라나섰는데안 하던 짓을 하면 고생을 한..

리처드 하스, '혼돈의 세계'

리처드 하스는 국제뉴스에서 꽤 자주 이름을 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포린어페어스'로 유명한 미국외교협회(CFR)의 회장이고, 미국 외교문제에 대해 유명 언론들에 적잖이 코멘트를 해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조지 H W 부시 시절에 백악관 특보와 국가안보회의(NSC) 중동-남아시아 담당 특보를 했다고 한다. 리처드 하스의 (김성훈 옮김. 매일경제신문사)를 읽었다. 부제가 '미국 외교정책과 구질서의 위기, 그리고 한반도의 운명'이라 달려 있다. 영어 제목은 A World in Disarray 이고 부제는 '미국 외교정책과 구질서의 위기'다. 한글판은 제목의 Disarray를 '혼돈'으로 옮겼고 부제에다가 '한반도의 운명'을 덧붙였다. 번역은 매끄럽다. 다만 번역자는 하스 스스로 "한국에서는 Disarray..

딸기네 책방 2018.06.03

[기협 칼럼] 청와대와의 경쟁

26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두 번째 정상회담이 열리고 만 하루 동안 청와대 페이스북에 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통일각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두 번째 정상회담을 개최했습니다”라며 회담 사실을 공개한 글로 시작해 두 사람이 만나는 사진, “회담 결과는 27일 오전 10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밝힐 예정”이라고 예고한 글, 현장의 영상, 회담 결과를 전하는 문 대통령의 동영상, 발표문 전문, 기자회견 문답, NSC 상임위원회 회의결과 브리핑이 뒤를 이었다. 청와대 웹사이트와 트위터에도 비슷한 내용들이 그대로 올라왔다. 영상 제작 뒷이야기같은 ‘팬서비스’도 빠지지 않는다. 언론들은 남북 정상의 ‘번개’를 재빨리 속보로 전했고, 시민들 관심은 높았고, ..

아구스틴 푸엔테스, '크리에이티브'

크리에이티브-돌에서 칼날을 떠올린 순간아구스틴 푸엔테스. 박혜원 옮김. 추수밭. 5/24 요새 이런 책을 어쩐지 연달아 보게 된다. 태영씨가 보내준 책을 회사 책상에 놓아두고 있다가 펼쳐들었는데 순식간에 읽었다. 스티븐 핑커의 (지난 주 참석한 독서모임의 어느 분이 '간지나게 꽂아두고 읽지 않은 책'으로 첫손 꼽았던)나 크리스토퍼 보엠의 , 제러미 리프킨의 와 프란스 드 발의 , 그리고 넓게 보면 유발 하라리의 . 각기 조금씩 결이 다르긴 하지만 모두 "인간의 본성은 폭력적이다"라고 말할 수 없으며 인간은 협력을 통해 진화했다고 말하는 책들이다. 는 주로 고인류학적 증거에 초점을 맞춰서 인류가 서로 협력하며 진화했다고 말한다. 거기에다가 '창의성'이라는 것을 결합시켰다. 누군가의 창의성이 협력을 통해 강..

프리먼 다이슨, '과학은 반역이다'

"50년 전 영국에서 수학을 공부할 때, 훌륭한 수학자인 고드프리 해럴드 하디는 나의 스승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에서 일반인에게 수학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한 작가로도 유명하다. 하디는 응용할 데도 없는 아주 쓸모없는 추상적인 예술작품을 창조하는 데 인생을 허비했노라고 당당하게 선언했다. '부의 분배에 불평등을 강화하는 쪽으로 기술이 발전하거나 삶의 파괴를 더 노골적으로 조장할 때, 흔히들 과학이 쓸모 있다고 말한다.' 사방에서 전쟁의 포성이 귀청을 찢고 있을 때, 하디는 이 말을 썼다." (42쪽) 다시, 프리먼 다이슨. 이번 책은 (김학영 옮김. 반니)인데, 서평과 에세이가 적당히 섞여 있다. 이전 책들에서 이미 읽은 에피소드들이 좀 겹쳐 있고, 내가 접한 적 없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책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