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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핑커, '언어본능'

언어본능 THE LANGUAGE INSTINCT. 스티븐 핑커. 김한영 외 옮김. 소소. 스티븐 핑커의 책은 ‘빈 서판’에 이어 두 번째다. 전작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공통점이 있다. 구미를 끌어당기는 제목에 ‘미국의 도킨스’ 같은 냉랭하고 재치 넘치는 어투, 그러나 책장을 넘기면 사실은 너무나 학구적이어서 ‘재미있으면서도 지루하다’는 것이다. 지금 책꽂이에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도 꽂아놓고 있는데, 두께로 봤을 때 역시나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은 말 그대로 인간의 ‘언어 본능’에 대한 것이다. 인간은 언어를 학습할 수 있는 생물학적 구조를 타고 났고, 그런 점에서 보면 언어는 가히 ‘본능’이다. 이 본능은 또한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형성되고 발전돼온 것이라는 얘기다. 저자는 노..

현대 과학의 6가지 쟁점

현대 과학의 6가지 쟁점 Paradigms Regained존 L. 캐스티. 권기호ㆍ김희봉 옮김. 지식의풍경 서평을 먼저 읽고 책을 사서 보는 일이 통 없는데, 이 책은 100% 알라딘 이네파벨님의 소개글 때문에 사서 봤다. 저자에 대해서도, 책에 대해서도 들어본 바 없지만 들여다보니 김희봉님 번역이네. 저자는 미국 산타페연구소 교수라고 한다. 책은 제목 그대로 6가지 질문들을 던지면서 그에 대한 찬반 양론을 소개한다. 저자가 이미 이 주제들에 대해서 1989년 책 한권을 냈었다고. 2005년 다시 쓰여진 이 책은 전작 이후, 그러니까 1989년에서 2005년까지의 15년 남짓한 기간 동안 과학계에서 발표된 새로운 연구 성과들을 바탕으로 6가지 쟁점에 대한 찬반을 다시 한번 판가름 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

초파리의 기억- <핀치의 부리>에 이은 또 하나의 감동

초파리의 기억 Time, Love, Memory : A Great Biologist His Quest for the Origins of Behavior 조너던 와이너. 조경희 옮김. 최재천 감수. 이끌리오 를 쓴 조너던 와이너의 책이라고 해서 무조건 샀다. 좀 허풍 섞어 말하자면 지금껏 태어나 읽은 책들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다. 그러니까 조너던 와이너의 이름은 나에겐 ‘교주’의 이름과 같은 것이니, 신도는 교주를 따를 수밖에. 이 책 역시 훌륭하다. 분량이나 밀도 면에서 보다는 좀 모자란다 싶지만, 별 다섯 개 짜리인 것은 분명하다. 책장을 넘길수록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면서 묵직해지는 느낌. 조너던 와이너 특유의 글쓰기 비법은 대체 뭐길래, 과학책이 이렇게 문학적이고 철학적이고 ..

레이 커즈와일, '특이점이 온다' THE SINGULARITY IS NEAR

특이점이 온다 THE SINGULARITY IS NEAR 레이 커즈와일. 김명남·장시형 옮김. 진대제 감수. 김영사 레이 커즈와일은 참 재밌는 사람인 것 같다. 발명가이고, 부자이고, 불로장생에 관심이 많은 사람인데, 아이디어맨인데다가 생각이 앞서나가도 한참 앞서나간다. 저자는 “내가 너무 앞서나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변화는 이미 진행 중!”이라고 누차 주장하는데, 나는 저자의 말에 어쩐지 혹한다. 허풍선이처럼 표현을 해서 그렇지, 아서 클라크의 같은 소설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 혹은 상상돼 왔던 것들 아닌가. 저자는 유전학, 나노기술, 로봇공학이 이번 세기 전반을 지배할 세 가지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며, 이는 정보혁명의 서로 다른 세가지 얼굴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넘어 인..

부의 기원 -엘러건트하고 아카데믹한 경제학

부의 기원 The Origin of Wealth에릭 바인하커. 안현실, 정성철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경제학은 과학인가. 과학이라면, 어째서 실물 경제를 설명하는데 그렇게 무용한가. 원래 경제학은 생물학과 발걸음을 같이 했다. 맬서스 인구론을 생각해보라. ‘적자생존’을 경제에서의 흥망에 적용하면서 근대 경제학이 시작됐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이후 경제학의 패러다임은 물리학을 닮은 쪽으로 바뀌었다. 경제를 수요-공급의 함수곡선과 ‘균형’ 개념으로 설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물리학적 균형에 경도된 경제학에 진화라는 패러다임을 적용, 다시 되돌리자는 것. 저자가 제안하는 ‘생물학적 경제학’의 패러다임은 물론 적자생존 생물학과는 다른 ‘복잡계 경제학’이다. 복잡계는 이 책의 저..

딸기네 책방 2007.11.02

신도 버린 사람들

신도 버린 사람들 Untouchables (2002)나렌드라 자다브 (지은이) | 강수정 (옮긴이) | 김영사 | 2007-06-08 워낙 책을 오래 걸려 읽는 편인지라, 처음 책을 펼칠 때에 표지 안쪽에 읽기 시작한 날짜를 적어놓는다. 그런데 지금 보니 유독 이 책 앞쪽에는 내가 날짜 적어놓는 것을 잊었는지 표시가 안 되어있다. 날짜를 세어보진 않았지만, 다 읽기까지 몇 달은 걸린 것 같다. 실은 앞에 지지부진 진도를 못 나가다가 요 며칠 새 후닥닥 읽었다. 갑자기 재미가 들렸는지, 소박하고 힘 있는 스토리에 확 빠져들었다. 제목 그대로, 책은 불가촉천민 Untouchables 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 나렌드라 자다브는, 이 책의 소개에 따르면 장래 인도 대통령이 될지도 모를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

딸기네 책방 2007.10.31

책꽂이

책꽂이, 그러면 좀 싸고 가벼운 것 같고 책장, 그러면 무겁고... 어쩐지 장식장 같은 그런 느낌이 나는데 다음달쯤 이사를 한다. 결혼 10여년 만에 살림살이 장만한다고, 돈쓰느라 아주 신났다. 원래 내 취향은 로코코와 바로크의 중간 지점에 아르데코를 섞은... 것인...데... 돈이 모자라 본의 아니게 젠 스타일로 향해가는 듯한 느낌이 없잖아 있다. 보는 눈은 있어가지구... 지난 주말에 일산 가구공단(이사간다고 땡처리 중임) 들러서 구경을 했는데 진짜로 이쁜 소파를 발견했다. 초록색 줄무늬 소파... 넘 이쁜데 오지게 비싸다 어차피 소파는 안 살거니깐. 왜냐? 난 '거실을 서재로'를 이미 진작부터 실천하고 있다. 돈이 없어서리... 지금 사는 집이 딱히 대저택이 아니라서 -_- 테레비를 방안에 들여놓..

편집보다 내용이 알찬 <보스니아 역사>

보스니아 역사 김철민 (지은이)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 2005-04-10 보스니아 역사에 대해 충실히, 교과서적으로 중세부터 최근(2005년)까지를 설명하고 있어서 크게 도움이 됐다. 발칸을 비롯한 동유럽 역사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사실 옛 유고연방의 내전은 참 ‘이해하기 힘든’ 사안이었다. 그 지역 상황이 비상식적이어서가 아니라, 내게 기본적인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그렇게 민족적, 종교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었나, 어째서 그들은 티토 치하 수십년간의 한 나라 경험에도 불구하고 냉전 끝나자마자 갈라졌나, 어째서 그들은 한때 한 나라 국민이었는데 그렇게 격렬하고 잔혹한 내전과 인종청소를 자행하게 되었나. 의문은 많았지만 그들의 역사에..

딸기네 책방 2007.10.06

부의 제국 -<주식회사 미국>의 역사

부의 제국 Empire of Wealth (2004) 존 스틸 고든 (지은이) | 안진환 | 왕수민 (옮긴이) | 황금가지 그냥 쓱쓱 읽었다. 540쪽 분량인데, 제발 우리나라 책들, 하드커버 하지 말고 폰트 좀 줄이고 위아래좌우 여백 줄이고 줄 간격 좀 줄여줬으면 싶다. 이 책은 250~300쪽 분량이면 딱 적당할 것 같다. ‘미국은 어떻게 세계 최강대국이 되었나’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답은 뭘까? 첫째, 미국은 땅이 넓었고 자원이 많았다. 둘째, 미국인들은 혁신을 잘 했다. 셋째, 미국은 20세기 양대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을 뿐 아니라 최대 수혜자였다. 넷째, 잘못된 정치인들과 어리석은 판단도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미국은 비교적 정치를 잘 했다. 기타등등. 다 맞는 얘기인 것 같다. 그 ..

딸기네 책방 2007.10.05

십자군, 무미건조해서 더 재미있는 책

십자군, 기사와 영웅들의 장대한 로망스 The New Concise History of the Crusades 토머스 F. 매든. 권영주 옮김. 루비박스 십자군에 대해 별반 관심 없는데, 어찌어찌 집에 이 책이 있는 것을 보고 심심풀이 삼아 읽게 됐다. 읽다보니 재미가 있고 저자가 말하려는 바가 분명해서 쑥쑥 넘겼다. 책 원제는 THE NEW CONCISE HISTORY OF THE CRUSADES 인데 한글판에 부제를 ‘기사와 영웅들의 장대한 로망스’로 달아놨다. 제목 장난질이야 흔하다 해도, 이 경우는 좀 심했다. 요즘 ‘이슬람 바로보기’ 같은 흐름이 분명히 있는데 2005년 출판된 책에서 겨우 이따위 19세기 풍의 부제를 달아놓다니. 이 책은 ‘기사와 영웅들의 장대한 로망스’하고는 완전히 거리가 멀..

딸기네 책방 2007.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