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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여인의 죽음

왕 여인의 죽음 The Death of Woman Wang조너선 D. 스펜스 (지은이) | 이재정 (옮긴이) | 이산 | 2002-05-13 알라딘에서 '왕여인의 죽음'을 검색해보면 두 종류의 책이 나온다. 하나는 이화여대출판부에서 예전에 냈던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이산에서 펴낸 이 책이다. 내겐 '왕여인의 죽음'이라는 책이 두 권 있다. 전자와 후자 모두를 갖고 있는데, 사정이 좀 있었다. 처음에 이대출판부에서 나온 책을 샀는데-- 허거걱 번역도 엉망이고 책도 너무 구식이어서 읽을 기분이 안 들었다고나 할까. 그러던 차에 후자를 어찌어찌 구하게 됐다(그렇게 해서 이산의 제법 훌륭한 버전으로 책을 읽게 된 셈인데, 말 나온김에 번역 얘기하자면 이 책의 번역은 꽤 훌륭해서, 읽을 때에 술술 넘어갔다). ..

딸기네 책방 2004.10.07

100년 뒤의 나를 흔든 '천안문'

천안문 조너선 스펜스 (지은이) | 정영무 (옮긴이) | 이산 | 1999-02-27 이제야 이 책을 다 읽었다고 하면, 한 친구가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벌써 몇년 전이던가. 나보다 열 살 어린 그 친구와 “‘천안문’을 다 읽고나서 이야기해보자”는 얘기를 했었다. 친구는 약속대로 책을 읽었고, 나는 그저 책장에 꽂힌 ‘천안문’의 뒷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조너선 스펜스의 책 중에서 나는 ‘현대 중국을 찾아서’ 1권과 2권을 가장 먼저 읽고 경탄을 금치 못했다. 그렇게 빠져든 스펜서의 세계. ‘강희제’와 ‘칸의 제국’, 그리고 아주아주 오랜시간에 걸쳐 읽고야 만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왕여인의 죽음’. 한권 한권 내게는 주옥같고, 추억같은 책들이다. 스펜서의 책 몇권을 ‘찜’..

딸기네 책방 2004.10.06

새로쓴 일본사

새로 쓴 일본사 要說 日本歷史 (2000) 아사오 나오히로 엮음. 연민수, 이계황, 임성모, 서각수 옮긴김. 창비 2003-03-20 ‘새로쓴’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역사책치고는, 특별히 ‘이데올로기적으로’ 편향되었다거나, 좌파적이라거나, 극단적인 뒤집어보기를 시도한다거나 하는 종류의 책은 아니다. 하지만 일본사에 이제 막 관심을 갖기 시작한 나같은 몽매한 독자들 입장에서는, 일본사 개론서로 대단히 훌륭한 책이고, 까만 별 일곱개 정도는 주고 싶다. 책은 일본사를 선사시대에서부터 아주 최근(1990년대 이후)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그래서 책이 좀 두껍다). 단락별로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의 글을 모아 엮었는데, 최근의 연구 성과와 학계 견해까지 되도록 수록하려고 애쓴 기색이 역력하다. 고대사..

딸기네 책방 2004.10.02

다카시 후지타니, '화려한 군주'

화려한 군주 다카시 후지타니 (지은이) | 한석정 (옮긴이) | 이산 | 2003-11-07 출판업계에 대해 아는 바도 없고, 출판사 이름을 보고 책을 고르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나온 책이라면 믿을만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출판사는 분명 있다. 내게는 '이산'이 그런 출판사다. 이산에서 나온 몇편의 책들은 모두 내게 풍요로운 독서의 기억을 선물해주었고, 이 책 '화려한 군주' 역시 그랬다. 이 책에는 '근대 일본의 권력과 국가의례'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저자 다카시 후지타니는 "절대주의 국가의 화려한 의례와 상징들은 근대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전제 아래(물론 이같은 전제는 에릭 홉스봄 등의 선배들에게서 나온 것이며 저자의 독창적인 고안물은 아니다),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근대 일본의 ..

딸기네 책방 2004.09.30

주변에서 본 동아시아

주변에서 본 동아시아 - 서남동양학술총서 20 백영서, 전형준, 정문길, 최원식 엮음 / 문학과지성사 상상의 공동체? 내셔널리티의 문제는, 참 뭐라 단언하기 힘들다. 누구는 상상의 공동체라고 하고, 이건 오만가지 책들에서 인용되는 걸로 봐서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상상 나부랭이'로 치부해버리기엔 덩치가 너무 크다. 하지만 '민족이란 무엇이다'(그것을 '국민'으로 번역하든 '민족'으로 번역하든) 딱 잘라 말하기 힘들다 해도, 분명한 것은 있다. 한 사람의 아이덴티티는 국민, 민족, 부족, 종족, 인종, 종파 등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규정된다. 이름을 지은 사람이 타인이든 자신이든 간에, 이런 이름들이 따라붙는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긴 힘들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어..

딸기네 책방 2004.09.28

테러 시대의 철학

테러 시대의 철학 지오반나 보라도리. 김은주, 김준성, 손철성 옮김. 문학과지성사. 9.11과 나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에서 대형 테러가 났던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회사에서 두 명의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비행기가 쌍둥이 빌딩에 부딪쳤다고, 큰 일이 일어난 것 같다고. TV를 켰다. CNN방송은 아무 설명도 없는 채로, 불타오르고 있는 무역센터 건물을 비추고 있었다. 신문사에서 일하는 죄로 부랴부랴 선배들에게 연락을 하고 회사로 달려가 호외를 만들었다. 그 뒤로 두달 동안은 정신이 없었다. 새벽같이 출근해서 정신없이 외신을 들춰보고 기사를 '써제꼈던' 날들이었다. 나는 그때 임산부였고, 뱃속의 아이는 아마 태중에서 '테러'와 '전쟁'이라는 두 단어를 가장 많이 들었을 것이다. 이 아이가..

딸기네 책방 2004.09.24

내셔널 히스토리를 넘어서

내셔널 히스토리를 넘어서 고모리 요이치 | 다카하시 데쓰야 (지은이) | 이규수 (옮긴이) | 삼인 | 2000-04-10 일본 지식인 18명의 '내셔널리즘 비판'을 묶은 것인데,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서경식의 에세이에서 극우파들의 주장이 투영되는 매스컴의 문제, 전쟁과 성폭력의 문제 등을 다소 잡다하게 엮어놨다. 일본 내에서의 역사논쟁을 상세히 알고 있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글도 있고 해서 전반적으로 재미는 없었다. '내 어머니를 모욕하지 말라'는, 서경식의 절규를 읽으면서 좀 울기는 했다. 1. 결국 역사란, 감출수 있는 것도, 감춰서 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역사는 파헤치고, 읽어내고, 기억해야만 하는 것이다. 2. 모순은 아래로, 아래로 향한다. '식민지의 가난한 여성'들에게 가해진 가장 극단..

딸기네 책방 2004.09.22

[스크랩] 투르니에, '심장이 내는 소리

나는 낙관적인 사람이고 싶다. 어떤 상황에서도 농담 한마디 던질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깨끗한 죽음이 예정되어 있는 모양이니 좋은 일'이라고! 투르니에 할아버지, 당신 참 대단한 분이셔요. 블리니 종합병원에서 초음파 심장검진을 받다. 대수롭지 않은 검사이거니 했는데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같은 불쾌한 소음이 기계를 통해 들렸다. 내 심장이 내는 소리라고 했다. 검사 결과 분명한 심장비대임이 판명되었다. 나는 오히려 기분 좋은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심장이 그렇게 커졌다 이 말이지! 그런데 사실 죽음에는 두 가지가 있지 않은가. 암으로 인한 더러운 죽음과 심장으로 인한 깨끗한 죽음 말이다. 그렇다면 내겐 깨끗한 죽음이 예정되어 있는 모양이니 좋은 일 같다. -미셸 투르니에, 에서 이래서 투르니..

딸기네 책방 2004.09.15

반지제왕- 골룸을 만나던 날

반지제왕, 아주 오랜시간에 걸쳐서 읽고 있다. 이미 10년전쯤에 처음 소설책을 구입한 이래 수차례 '완독'에 실패한 것은 내 게으름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의외로 내겐 이 책이 그닥 흡입력이 없었다. 솔직히 앞부분, 지겨웠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1편은 버섯마을같이 생긴 귀여운 호빗네 마을만 기억나고, 2편은 거의 기억이 안 난다. 3편은 제법 장관이어서 재밌게 봤다. 스펙터클에 압도되기도 했고. 하지만 (반지팬들께는 죄송하지만) 뭐 그렇게 감동적인 영화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배우가 없는 영화'라는 점도 맘에 안 들고,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을 잘 살린것 같지도 않고. 그 영화 만드는데 돈이 꽤 들어갔을 것 같기는 하다. 다시 소설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어느 순간, 소설가의 '느낌'이 나에..

딸기네 책방 2004.07.31

후지따 쇼오조오, '전체주의의 시대경험'

전체주의의 시대경험 후지따 쇼오조오 (지은이) | 이홍락 (옮긴이) | 창비(창작과비평사) 리뷰를 쓰려고 마음먹은지는 오래됐다. ‘서평’이라고는 하지만 어차피 ‘나를 위한’ 독후감이다. 이 책을 읽고서 내가 나에게, 아무 말 없이 넘어가서는 안 될 것 같아서 반드시 독후감을 정리를 해야겠거니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리뷰를 쓰기가 참 힘들었다. 이 책, 몇마디 말로 정리해버릴 수 있는 그런 책이 아니다. 다른 분들의 리뷰를 읽었다. 알라딘에 올라와 있는 리뷰 3편, 별이 열다섯개. 거기에 지금 내가 별 다섯개를 더 붙이고 있다. 몇편 안 되는 리뷰이지만 이렇게 일관되게 ‘별 다섯개’를 받을 수 있는 책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더우기 재미난 소설책도 아니고, 뭔가 대중적인 흥미를 불러일으킬 요소 따위란 눈..

딸기네 책방 2004.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