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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손택, '타인의 고통'

타인의 고통 Regarding the Pain of Others (2003) 수잔 손택 (지은이) | 이재원 (옮긴이) | 이후 | 2004-01-07 잔혹한 장면, 이른바 '엽기'에 대해 나는 내성이 거의 없는 편이다. 끔찍한 이미지를 보는 것은 정말이지 끔찍하다. 그래서 잔혹한 장면이 등장하는 영화도 보지 않고, 엽기 만화도 보지 않는다. 잔혹한 사진은? 사람의 신체를 훼손하는 모습이라든가 끔찍한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담은 사진들을 찾아가며 볼 일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수없이,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내 눈에 들어오고야 마는 사진들이 있다. 영화나 만화보다 '현실'의 사진들이 더더욱 끔찍하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호러 영화라면, 굳이 돈 내고 보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현실 속의..

딸기네 책방 2004.10.26

베네딕트 앤더슨, '상상의 공동체'

상상의 공동체 베네딕트 앤더슨 (지은이) | 윤형숙 (옮긴이) | 나남출판 | 2003-10-05 어젯밤 잠들기전 앤더슨의 책을 곱씹어보면서, 감히 ‘민족’이라는 큰 주제를 머리속에 떠올렸다. 뇌가 빙글빙글 돌았다. 대체 이것은 무엇이관대 한쪽에서는 허구적인 감정일 뿐이라 하고 한쪽에선 거기에 목숨을 거는가.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버릇을 들인지 꽤 오래됐다. 다만 제목과 저자 이름에 한줄짜리 소감을 붙이는 것일지라도, 독후감을 정리하기로 한 것이 91년이니 독후감이라면 물릴만큼 써봤다(난 쉽게 잘 물리지 않는 편이다 -_-). 그런데도 아직까지 책을 읽고 나서 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정리해야할지 난감할 때가 있다. 앤더슨의 이 책이 바로 책이었다. 앤더슨의 주장들, 그리고 ‘한민족’이라는 이름이 불러일..

딸기네 책방 2004.10.25

꼼꼼이가 읽은 책

안아줘 제즈 앨버로우/웅진닷컴 꼼꼼이 또다른 별명은 '안아줘쟁이'다. 허구헌날 엄마아빠한테 '안아줘, 안아줘'... 하지만 안아주는 것은 주로 아빠의 일이고, 힘없는 엄마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로 안아주지 않기 위해 방어작전에 나선다. 나같은 엄마한테 이 책은 치명타였다! 안아줘... 안았네!... 안았어! 대사라고는 저것밖에 없는 동화. 하지만 나름대로 스토리가 있고 보면, 내 딸 또래 아이들 대상으로 만들어진 이른바 '정보성 동화'(색깔이름 동물이름 등등 나오는 책들)하고는 분명히 다르다. 어쩌다가 외토리가 되어버린 아기 원숭이, 다른 동물들 엄마랑 아기랑 안고있는 것 보고 서럽게 '안아줘'를 외치다가 엄마를 만나 드디어 안기게 됐다는 줄거리. 단순하다고? 단순한 것 치고는, 마지막에 나름대로 '복선..

매트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

본성과 양육 Nature Via Nurture: Genes, Experience, and What Makes Us Human (2003) 매트 리들리 (지은이) | 김한영 (옮긴이) | 이인식 | 김영사 | 2004-09-13 재미와 유익함, 모든 면에서 매트 리들리의 저술은 과학서적으로서는 단연 A급이다. 리들리의 책에 별 다섯개를 줄 수 밖에 없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재미있다. 생물학 유전공학 의학 심리학 사회학 등 연관분야까지 모두 포함해, 다종다양한 연구 사례들을 들어 가며 주제를 펼치기 때문에, '일반인을 위한 과학개론서'로 손색이 없다. 특히 최근의 연구들까지 항상 업데잇 되어 있다는 점은 리들리식 과학 저널리즘이 보여주는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다. 둘째, 개론서의 역할은 '소개'..

[스크랩] 미셸 투르니에, '외면일기'

외면일기 Journal Extime (2002) 미셸 투르니에 (지은이) | 김화영 (옮긴이) | 현대문학 | 2004-01-29 미셀러니 성격의 글들은, 의외로 익숙해지기가 쉽지 않다. 딱히 주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굳이 주제를 따지자면-- 아마도 그 글을 쓴 사람 그 자체가 아닐까. 투르니에의 글은 투르니에가 그 소재이자 테마인 것이고, 마루야마 겐지의 글은 마루야마가 소재이자 테마다. 그래서 나는 미셀러니에는 여간해서는 손을 대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가장 가비얍고, 어떻게 보면 '사람'을 가장 열심히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 그 장르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모르고 보면 미셀러니만큼 별볼일없는 것이 없다. 반면에, 짧은 글들 사이에 묻어나는 촌철의 유머로 해서 글쓴이의 내면의 일단을 ..

딸기네 책방 2004.10.22

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

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 The Fall of Constantinople 1453 (1965) 스티븐 런치만 경 (지은이) | 이순호 (옮긴이) | 갈라파고스 | 2004-09-02 별 다섯개를 줄까, 네개를 줄까 망설였다. 고민 끝에 별 네 개. 이런 종류의 '교양서적'을 읽는 것에 별로 익숙치 않아서일까, 재미는 있었지만 이 책의 '질'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아서다. 일단 재미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다고 해야하려나. 1453년 콘스탄티노플의 '최후'를 가져왔던 전투와, 그 앞서거니 뒷서거니 했던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을 다룬다. 제목에 걸맞게, 콘스탄티노플 공성전을 꽤 정성들여 묘사했다. 도시의 지도와 성벽의 구조, 병력 배치 따위를 상세하게 설명해놓아 머리속에 그림을 그려가며 당시 상황을..

딸기네 책방 2004.10.20

장하준 '개혁의 덫'

사실 이 책은, '서평' 거리가 될 만한 책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신문이나 방송 기사에 대해서 '미디어 비평'이라는 장르가 정착한지 오래이긴 하지만 이 책을 '책'으로 놓고 보면, 신문에 실렸던 칼럼들을 묶어놓은 것이기 때문에 맘먹고 서평을 쓴다는 것이 우습게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책의 내용중에는 관심거리 내지는 논란거리가 될만한 것들이 많았고, 나 개인한테 던져주는 생각거리들도 많았다. 개혁. 개혁이라는 말이 아주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분명 어떤 분야에서든 '개혁'은 의미가 있고 필요한 작업이다. 모순투성이 우리 사회를 고치고 바꾸겠다는데, 사회에 대한 불만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개혁이라는 말 자체에 반기들고 나설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개혁이라는 말은 또한 언제..

딸기네 책방 2004.10.20

무려 '군주론'을 읽다

군주론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은이) | 강정인 (옮긴이) | 까치글방 10년 가까이 해왔던 일을 접고 조금 긴 방학을 맞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일을 하는 동안에 이런저런 핑계로 접하지 못했던 이른바 '고전'을 좀 읽고 싶었다. 생각같아선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를 잡아보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 기나긴 내용들을 소화하기 힘들것 같고 해서 택한 것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대하소설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누가 뭐래도 고전이다 싶어 손에 들었다. 결과는? 생각보다 짧았고, 생각보다 빨리 읽었고,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이 책의 정치사상사적 의의를 설명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이고,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것 또한 내 역할은 아닌 것같으니 그저 '문외한의 독후감' 정도로만 해두자. 정치사상을 다룬 책들 치고 마키..

딸기네 책방 2004.10.19

엘러건트 유니버스

엘러건트 유니버스 The Elegant Universe: Superstrings, Hidden Dimensions and the Quest for the Ultimate Theory 브라이언 그린 (지은이) | 박병철 (옮긴이) | 승산 | 2002-03-11 과학책들 중에 아끼는 것들이 많았는데, 일본에 오면서 그 중 이 책 한권만 들고왔다. 역시나 학문의 왕은 물리학이다! 物理라니, 이보다 더 심오한 것이 어디 있으리요. 공부삼아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문턱'을 깨닫게 된다. 한가지 주제나 상황에 대해 쓰여진 책을 3권 읽으면 감이 잡히고, 10권 정도 읽으면 좀 알겠다 싶은 걸 보니 '10권'이 내게는 문턱인 셈이다. 그런데 이젠 문턱을 넘었을 때가 되었는데도 도통 내 머리로 '상상' 내지..

반다나 시바, '물 전쟁'

물전쟁 Water Wars : Privatization, Pollution, and Profit 반다나 시바 (지은이) | 이상훈 (옮긴이) | 생각의나무 | 2003-01-20 사실 그다지 새로운 주제는 아니다. 하지만 역시나, 머릿속으로 '물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라고 아는(안다고 착각하는) 것과, 구체적인 사실들이 적시된 보고서를 읽는 것하고는 다르다. 이 책은 반다나 시바가 전지구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물전쟁에 대해 사례를 들어가며 적은 보고서다. 나 또한 이른바 '생수'를 사먹었더랬다. 무엇이 살아있는 물이고 무엇이 죽은 물이냐. 저자가 다루는 '물전쟁'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물을 상품으로 보는 '세계화된' 시각(가치관)과 물을 자연의 선물로 소중히 여기는 생태정 가치관 사이의 전쟁, 그리고 여기서..

딸기네 책방 2004.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