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6236

[구정은의 ‘수상한 GPS’]남중국해와 필리핀, 거기서 일본이 왜 나와?

3월 초 중국과 필리핀이 남중국해 문제로 다시 갈등을 빚었다. 발단은 제2토머스 암초에서 불거진 충돌이었다. 제2토머스 암초(Second Thomas Shoal), 남중국해의 지명들이 대개 그렇듯이 여러나라가 영유권을 주장하는 까닭에 이름이 여럿이다. 필리핀 말로는 아융긴 숄, 중국어로는 런아이자오라 부른다고 한다. 남중국해의 스프래틀리 군도(난샤군도)에 있는 산호초인데 스프래틀리 군도가 바로 중국, 브루나이, 필리핀, 말레이시아, 베트남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복잡한 곳이다. 특히 중국은 제2 토마스 숄을 포함한 남중국해 거의 전역을 자기네 영유권이라 주장하고 있다. ‘제2토마스 숄’, 뭍으로 올라온 배 하지만 제2토마스숄은 필리핀 해군이 1999년 첫 상륙한 이래로 ‘실효 지배’를 해왔다. 당시 중국과 ..

박건영, <국제관계사>

국제관계사 박건영. 사회평론아카데미. 4/7 정말 재밌었다. 몇 년 새 현대 세계사 책을 좀 읽었지만 사실상 유럽사였는데 이 책은 국내 학자의 책이라 아시아, 한국과의 연관성이나 맥락을 잘 설명해줘서 넘넘 좋았다. 유럽 이외의 세계에 대해서도 충실하게 설명하고 있고. 뒤에 가서 공개된 문헌 자료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는 점도. 20세기 세계사 책으로 최고다!!! 제1차세계대전의 원인을 안보와 동맹이라는 전략적 이익의 관점에서만 보면 전쟁의 책임 소재가 모호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 특히 독일과 관련하여 자신은 전쟁을 원하지 않았으나 생존을 위해 할 수 없이 엮여 들어갔다는 주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관련 비밀문건이 공개되면서 독일의 책임을 부각하는 관점이 크게 대두하였다. 독일이 의도적으로 ..

딸기네 책방 2024.04.08

E H 카, < 20년의 위기>

E H 카, 김태현 편역. 녹문당. 3/16 E H 카가 전간기에 쓴 글과, 2차 대전 직후에 쓴 글을 함께 묶었다. 이상주의적 자유주의자들의 국제정치학을 현실주의로 견인해온 학자라고 하지만, 카가 말하는 것은 ‘두 날개가 모두 필요하다’ 쪽에 가깝다. 아주 재미있었다. 명료하고, 날카롭고. 전쟁은 여전히 군인들의 문제였고 국제정치는 외교관들의 문제였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와 같은 경향은 끝이 났다. 전쟁은 더 이상 직업군인들의 일만이 아니게 되었고 국제정치가 직업외교관들의 손에 의해 안전하게 관리될 수 있다는 생각도 사라졌다. (뚜렷한 물증 없이) 밀실외교가 전쟁의 원인이라고 생각한, 주로 영미의 대중은 국제정치를 대중화하려는 운동을 선도했다. 그러나 밀실외교가 성행했던 이유는..

딸기네 책방 2024.04.07

푸바오와 ‘판다 외교’

미국 닉슨 시절의 미-중 화해와 판다 외교가 유명하지만 판다가 정치적 선물이 된 것은 오래 전부터다. 다만 외교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청나라 때 쓰촨이나 티벳 동부 주민들이 중국 정부에 판다를 공물로 보냈다고 한다. 현대 판다 외교의 첫 번째 사례는 1941년 장제스 부인 쑹메이링이 국민당을 지원해주는 미국에 판다를 보낸 것이다. 미국에 판다가 간 것이 처음은 아니었고 1937년 미국인이 시카고 동물원에 처음 판다를 들여갔는데 외교적 차원에서 처음 간 것이 1941년 여름이었다는 얘기. 장제스 부인의 '판다 외교' 쑹메이링 여사가 살아 있는 판다를 포획해오게 해서 충칭으로 잡아온 뒤 미국 브롱크스 동물원으로 보내게 했다. 충칭에 있던 미국 라디오 리포터가 사회를 맡아서 미국 황금시간대에 중계되도록 기념..

[구정은의 ‘현실지구’] 파나마 ‘게의 섬’ 사람들의 기후변화 이주

가르디 수구두브 Cartí Sugtupu, Gardi Sugdub. 주민들의 언어로 ‘게의 섬’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중미 파나마의 산블라스San Blas 군도에 있는 섬이다. 파나마 본토의 북부 해안에서 1200미터 떨어져 있다. 산블라스 군도는 365개의 섬으로 이뤄진 아름다운 곳인데 대부분은 무인도들이지만 몇몇 섬에 토착민들이 살고 있다. 1500년대 초 스페인인들이 파나마를 식민지로 삼았다. 그 때 절멸을 피하고 살아남은 토착민들은 여기저기 옮겨다녀야 했다. 그런 토착민 중에 구나(Guna) 원주민 집단이 있었다. 원래 구나족은 오늘날 콜롬비아 땅인 우라바 만 일대에 살고 있었는데 스페인인들이 연안까지 몰려오면서 위기를 맞았고, 1800년대 중반부터 강 하구 근처의 섬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 ..

차태서, <30년의 위기>

30년의 위기 차태서.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3/12 성균관대 차태서 교수님의 신간. 미국 정치사를 이런 시각으로 보고 이렇게 과감하게(!) 써주시는 한국 학자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넘 반갑고 기쁘다. 2020년대 초반은 세계사에서 하나의 거대한 순환(cycle)이 종료되었음을 조망하게 되는 시간이다. 2021년 여름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와 탈레반 재집권, 2022년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은 단극체제의 균열과 자유세계질서 프로젝트의 종식을 재삼 확인시켜주었다. 특히 두 에피소드 모두 탈냉전기 미국에 의해 추진된 단선론적 역사철학에 근거한 거대 사회공학 구상이 모순에 부딪혀 나타난 후과라는 점에서, 각 사건은 오늘 날 세계체제 요동의 징후로서 읽혀진다. 회고건대, 팍스아메리카나의 거대한 ..

딸기네 책방 2024.03.16

에릭 홉스봄 ‘극단의 시대’

극단의 시대 상/하 에릭 홉스봄. 이용우 옮김. 까치 이전의 장기 19세기 3부작보다 나는 이 책이 더 재미있었다. 이미 자신 있게 평가할 수 있는 것은 황금시대가 낳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변동의 엄청난 규모와 충격이다. 그 영향으로 인한 전세계의 인간생활의 변화는 뒤집을 수 없을 만큼 깊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변화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금세기의 3/4분기는, 인류의 압도적 다수가 먹을 것을 재배하고 가축을 돌보며 살아간 긴 시대를 끝냈다는 이유만으로도, 석기시대의 농업 발명으로 시작된 인류사의 7,000-8,000년을 끝냈다고 말하는 쪽이 더욱 설득력 있다. 이에 비해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의 역사는, 아마도 역사적 중요성이 덜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23 러시아가 어디에 있..

딸기네 책방 2024.03.16

예멘, 후티, 유럽의 홍해 작전

미국과 영국이 예멘 해안에서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의 공격을 격퇴했다고. 후티는 1990년대 명망 높았던 종교 지도자 바드르 알딘 알후티의 이름을 딴 것. 독재정권 시절 차별받던 지방부족의 투쟁단체. 아랍의봄 뒤 독재정권 물러나고 새 정부 구성 권력 공유하기로 해놓고 새 대통령이 약속을 어김→ 후티는 다시 반군이 됨 후티 반군은 사나와 홍해 해안선을 포함한 예멘의 북서부 지역을 장악. 예멘 인구의 대부분이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후티 반군은 세금을 징수하고 화폐를 발행하는 사실상의 정부를 운영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예멘 정부는 남부 항구 아덴에. - 후티의 군사력은 실제로 얼마나 될까. 옛날엔 군사력이라 할 것이 별로 없었는데 이란 지원으로 무장 확대+사우디가 침공하면서 오히려 강화..

케네스 월츠 ‘인간 국가 전쟁’

인간 국가 전쟁 케네스 월츠, 정성훈 옮김, 아카넷. 3/9 월츠의 국제정치이론을 작년에 다시 읽었지만 처음 읽었을 때는 마찬가지로 어려웠다. 하지만 월츠의 은 훨씬 재미있다는 박상준 교수님의 말씀에 넘어가 이 책을 사서 읽음. 실제로 훨씬 재미있었다. 이른바 '민주평화론‘이라고 잘못 이름 붙여진 주장 의 근거를 살펴보고, 그 타당성을 검증해볼 것이다. 나는 개입주의적 자유주의자들과 개입주의에 반대하는 자유주의자들을 명확히 구분한 뒤, 오늘날 미국의 대외정책 입안자들이 빈번히 무시하고 있는, 개입주의적 자유주의자들의 성향 속에 숨겨진 위험에 대해 경고하였다. 평화는 전쟁을 위한 가장 숭고한 대의로 탈바꿈될 수 있으며, 만약 민주주의를 평화지향적 국가 형태 중의 하나라고 본다면 여타의 국가들을 민주정으로 ..

딸기네 책방 2024.03.09

에릭 홉스봄 ‘역사론’

역사론 에릭 홉스봄. 강성호 옮김. 민음사. 2/24 홉스봄 책을 읽는 김에 ‘역사론’도 꺼내 들었다. 읽다만 흔적이. 책을 오래 오래 읽기는 해도 다 끝까지 읽는데, 이 책은 대체 언제적에 읽다 만 것인지. 나는 역사가가 실재를 탐구한다는 견해를 강하게 옹호한다. 역사가는 확정된 사실과 꾸민 이야기 사이를, 증거를 필요로 하고 증거에 근거한 역사적 진술과 그렇지 않은 진술 사이를 근본적으로, 아주 중점적으로 구분하면서 시작해야 한다. 비록 시작했을 때와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상대주의는 법정에서 쓸모가 없는 것처럼 역사에서도 쓸모가 없다. 만약 독자들이 피고석에 앉게 된다면 실증적인 증거에 호소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포스트모던적 변호 방침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죄인을 변호하려는 변..

딸기네 책방 2024.02.24